국내산이라 자신하더니…5분 만에 "알바 실수였다" 돌변

입력 2026-09-21 14:46
수정 2026-09-21 15:42


추석 명절을 일주일 앞둔 지난 9월 16일 오후, 서울 중랑구의 한 전통시장 내 정육점.

“이 돼지고기 목살, 원산지가 어딘가요?”

‘원산지 표시 위반’ 단속반이 한 정육점에 들어갔다. 단속반원의 질문에 정육점주는 “국내산입니다”고 답했다.

하지만 원산지의 진실이 밝혀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속반원이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흰색의 검정키트를 꺼냈다. 키트 표면에 그어진 선은 단 ‘한 줄’. 국내산이 아닌 ‘외국산’이라는 명백한 신호였다.

2021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 연구사가 개발한 이 돼지고기 원산지 판별 검정키트는 돼지열병 항체 유무를 분석하는 원리다. 국내산 돼지고기는 백신 접종으로 항체가 있어 두 줄이 나오고, 외국산은 항체가 없어 한 줄이 나타난다. 과학적 증거 앞에 당황한 정육점주는 그제서야 “아, 죄송합니다. 알바생이 실수로 스티커를 잘못 붙인 것 같습니다”며 황급히 해명을 늘어놓았다.

농관원이 추석 대목을 노린 농축산물 부정유통을 뿌리 뽑기 위해 대대적인 불시 단속에 나섰다. 농관원은 올 추석을 앞두고 특별사법경찰관 285명과 명예감시원 2,500명 등 3,00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17일간 전국 선물·제수용품 유통 현장을 샅샅이 훑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13년 차 베테랑인 임상균 수도권농식품조사팀 기동팀장과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인 김원일 단속반원이 한 조를 이뤄 타깃 업소를 급습했다. 단속반의 불시 점검은 무작위가 아니다. 관세청 통관 자료와 수입농축산물 유통 이력을 빅데이터로 모니터링한 뒤, 수입산 유통 정황과 판매 실적 사이에 수상한 ‘갭’이 있는 업소를 정밀 타격하는 방식이다.

이 정육점 역시 사전 암행평가(미스터리 쇼퍼)를 통해 덜미가 잡혔다. 조사원이 손님으로 위장해 고기를 사 온 뒤 원산지 판별 검정키트로 사전 확인을 거치는 방식이다. 캐나다산 돼지고기를 국산으로 속여 팔던 이 정육점의 불법 행위는 단 5분 만에 드러났다.

앞서 불시 점검을 한 A식당의 원산지 표시판에는 배추 ‘국내산’, 고춧가루 ‘중국산’으로 적혀 있었다.
단속반원이 “배추에 국내산이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정말 맞습니까?”라고 묻자, 식당 사장은 “본사에서 확인하는 부분이라 잘 모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자료를 통해 중국산 김치를 사용하는 것을 이미 확인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표시판에는 국내산이라 적혀 있네요. 사장님, 지금 원산지 표시 위반하셨습니다.” 단속반원이 중국산 김치 유통 증거 자료를 제시하며 구두 조사를 이어가자, 결국 사장은 중국산 배추를 사용했음을 실토했다. 농관원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산 김치는 저렴한 홍고추를 고춧가루로 만들어 붉은기가 돌고 수분이 많아 뭉쳐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국내산 김치는 전체적으로 연한 색을 띠며 양념이 풍부하게 배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단속반은 현장에서 즉시 시정 명령을 내렸다. 메뉴판의 ‘국내산’ 글자를 가리고 ‘중국산’임을 명확히 표시하도록 조치했다.


원산지를 거짓으로 표시한 업주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농관원은 현장 조사 후 업주를 상대로 추가 대면조사를 진행한 뒤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아울러 원산지 표시 의무교육도 이수해야 한다.

농관원이 실시한 최근 6년간의 원산지 표시 점검에서 가장 많이 적발된 품목은 돼지고기(559건)였으며, 배추김치(531건)가 그 뒤를 이었다. 이밖에 두부류,닭고기,쇠고기 등도 다수 적발됐다.

단속을 마친 임상균 기동팀장은 “소비자들은 업소의 원산지 표시를 믿고 음식을 구매한다”며 “우리가 현장을 누비는 이유는 바로 소비자들의 알 권리와 신뢰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원산지 표시를 위반해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남기려는 유혹에 빠지는 업주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며 “원산지 거짓 표시는 눈앞의 작은 이익을 탐하다 더 큰 것을 잃는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그로플러스 주연우 인턴/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