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죽자’는 독기를 품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황당한 악재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뭉치게 한 기폭제가 됐습니다.” (주장 이승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코트 위에서 다 박살 내겠다’는 투지가 솟아올랐습니다.” (에이스 이현중)
12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오른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은 홈팀 일본과의 결승전 직전 겪은 어처구니없는 변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훈련 차량 노쇼(no-show)’라는 최악의 상황을 우승을 향한 강렬한 동력으로 치환했다.
니콜라이스 마줄스 감독(라트비아)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20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전에서 ‘숙적’ 일본을 67-57로 꺾고 우승했다.
하지만 쾌조의 금빛 헹가래 이면에는 하마터면 경기를 망칠 뻔한 아찔한 위기가 있었다. 이날 오전 한국은 숙소에 발이 묶이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조직위원회 측이 배정해야 할 훈련장행 버스가 아무런 설명 없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결승전을 앞두고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할 오전 훈련은 결국 전면 취소됐다.
위기는 오히려 결속력을 다지는 기회가 됐다. 선수단은 코트에서 땀을 빼는 대신 다 함께 산책하고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찾았다. 마줄스 감독의 냉철한 리더십도 빛을 발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농구의 ‘다음 플레이’를 예로 들며 당장의 악재를 잊고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이어 “결승전이 오전 7시40분에 열렸어도 우리는 철저히 준비했을 것”이라며 흔들림 없는 평정심을 강조했다.
감정적 동요를 차단하고 투지를 불태운 한국은 결승전에서 일본을 완파했다. 이로써 한국 남자 농구는 2014년 인천 대회 이후 12년 만에 아시안게임 우승 트로피를 탈환했다. 원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1982년 뉴델리 대회 후 44년 만이다.
짜릿한 우승의 환희 뒤에는 대회 운영을 향한 뼈 있는 일침과 한국 농구의 미래를 향한 묵직한 당부가 이어졌다. 2018년 자카르타 대회 동메달, 2022년 항저우 대회 7위라는 뼈아픈 굴곡을 모두 겪은 이승현은 “국제 대회에서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졌다”고 조직위를 꼬집으면서도, “오늘의 금메달이 한국 농구 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길 바라며, 앞으로 우리 어린 선수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농구를 누렸으면 좋겠다”는 진심을 전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