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팔려는 집주인도, 내 집 마련에 나선 무주택자도, 빌려 사는 세입자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와 실수요자 보호를 강조하고 있지만 세금과 대출, 실거주 규제가 맞물리면서 시장 참여자 모두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2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집을 팔려는 집주인의 가장 큰 고민은 세금과 매각 시점입니다. 특히 보유한 집을 세놓고 다른 곳에 거주하는 비거주 1주택자의 셈법이 복잡해졌습니다. 직장이나 자녀 교육 때문에 다른 지역에 사는 집주인은 보유와 매도, 실거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지난달 세제 개편안이 발표된 이후 마포·성동구 등에서는 비거주 1주택자의 매각과 실입주 문의가 늘었습니다. 집을 계속 보유할 때 내야 할 세금과 매도할 때 부담할 세금을 함께 따져야 해서입니다.
개편안 발표 이후 과세 기준을 다시 조정하는 방안까지 거론되면서 판단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세금과 거래 조건은 집주인이 집을 팔 시점을 결정하는 기준입니다. 적용 대상이나 예외 요건이 달라질 수 있다면 최종안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려는 집주인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매도를 결정해도 거래가 바로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출 규제로 매수자의 자금 여력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집주인은 호가를 낮출지 고민해야 합니다. 매수자를 기다리다가 정책이나 시장 상황이 바뀌면 원하는 시기에 집을 처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집주인이 매물을 내놨어도 무주택 실수요자가 곧바로 계약하기는 어렵습니다. 매수자는 가격뿐 아니라 대출 한도와 자기자금, 잔금 일정을 함께 계산해야 합니다. 가격을 낮춘 매물이 나와도 필요한 현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거래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정부는 오는 10월1일 기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임대 중인 주택을 무주택자가 매수할 때 실거주 의무를 유예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난 17일에는 유예 신청 기한을 2027년 12월31일까지로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기존 임대차계약의 잔여기간뿐 아니라 갱신계약도 한 차례에 한해 최장 2년까지 인정합니다.
무주택자는 세입자가 있는 주택도 매수 대상으로 검토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입주 시점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이 매수대금 지급까지 미룰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토지거래허가를 받은 뒤 4개월 안에 주택 취득 등기를 마쳐야 하는 조건은 유지됩니다.
현재 거주하는 전셋집의 보증금이 주요 자산이라면 보증금 반환일과 새로 살 집의 잔금일을 맞춰야 합니다. 매수할 집에 기존 세입자가 거주하면 바로 입주할 수도 없습니다. 해당 주택의 전세보증금을 승계하는 문제와 함께 자신이 머물 집의 보증금과 월세까지 계산해야 합니다.
대출을 받는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충족해야 합니다. 세입자의 보증금이 설정된 주택은 담보 여력도 제한될 수 있습니다. 매수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열려도 현금 여력이 부족한 무주택자에게는 문턱이 높을 수 있습니다.
실거주 유예 대상도 제한됩니다. 신청 기한은 내년 말까지 늘어났지만 매수자는 올해 5월12일부터 계속 무주택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기준일 이후 기존 주택을 처분했다면 현재 무주택자여도 특례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주택 매수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입자가 있는 주택을 매수하면서 입주를 늦추는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재 무주택자인지와 실제로 입주할 계획이 있는지만으로 특례 적용 여부가 결정되지 않습니다.
집주인과 매수자의 결정은 세입자의 주거 계획에도 영향을 줍니다. 집주인이 계약 만료 후 집을 매각하거나 직접 입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세입자는 새로운 집을 찾아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옮겨갈 집의 임대료입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25개 자치구의 아파트 평균 월세는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 연속 모두 올랐습니다. 8월 용산구 평균 월세는 282만원이었습니다. 광진구는 206만원을 기록했습니다.
세입자에게는 집값의 방향보다 다음 계약에서 내야 할 보증금과 월세가 더 중요합니다. 월세 지출이 늘어나면 내 집 마련에 쓸 종잣돈을 모으기도 어려워집니다. 집을 사기 위해 매수를 미뤘지만 그 기간에 부담하는 주거비가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실거주 유예 확대는 기존 세입자가 살던 집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정부는 10월1일 시행을 기준으로 15개월의 신청 기간과 최대 24개월의 갱신계약 기간을 합쳐 입주를 최장 3년3개월 미룰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갱신계약을 원하는 세입자의 주거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실거주 유예가 신규 전월세 계약의 보증금이나 월세를 낮추지는 않습니다. 집주인의 매각이나 실입주로 새로운 집을 구해야 하는 세입자의 부담은 그대로 남습니다. 살던 집에 계속 머물 수 있는지와 새로운 집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집주인은 팔고 싶어도 세금과 거래 가능성을 따져야 합니다. 무주택 실수요자는 사고 싶은 집이 있어도 대출과 잔금 마련에 막힙니다. 세입자는 계약 갱신과 이사, 임대료 상승을 걱정합니다. 한쪽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 다른 쪽의 주거와 자금 계획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입니다.
개별 정책에는 세 부담 조정과 가계대출 관리, 임차인 보호라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금과 대출, 실거주 기준이 잇달아 달라지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주거와 자금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집값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시장에 대한 규제책을 지속적으로 내놓으면서 정부의 시장 개입이 커진 상황"이라면서 "인위적인 제재로 시장 참여자들의 부담은 커져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정책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전반적인 틀에선 일관성을 가져가는 게 시장 측면에선 부담이 덜하다"고 부연했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