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남창동 남대문시장. 한 외국인 관광객이 갈림길마다 휴대폰 화면의 상가 안내도를 확대했다. 화면과 점포 번호를 번갈아 확인하며 매장을 찾았다. 한 점포에는 중국 SNS인 샤오훙슈 댓글 행사에 참여하면 사은품을 준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일본인 관광객 하루씨(23)와 미즈키씨(24)도 틱톡 영상을 재생한 채 시장 안쪽으로 들어왔다. 영상에 나온 ‘서울식품 청주상회’를 찾은 두 사람은 김 아홉 봉지를 샀다. 인근 아동복 상가에서는 젊은 외국인 부부가 옷을 고르고 있었다. 이들은 SNS에 나온 특정 상품과 점포를 찾아 골목 구석구석을 탐색했다.
방한 외국인의 장바구니가 ‘서울’이 적힌 기념품을 넘어 김, 그릇, 때 타월, 목욕 바구니, 아동복 등 한국인의 생활용품으로 채워지고 있다. 600년 전통의 도매시장이 한국 일상 용품을 골라 사려는 외국인의 ‘K생활 쇼룸’이 된 것이다. ◇외국인 유동 인구, 광장시장 9배
서울AI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남대문시장의 하루평균 외국인 유동 인구는 3만132명이었다. 또 다른 ‘핫플레이스’인 광장시장(3202명)의 9배가 넘는다. 남대문시장은 명동과 소공동 백화점이 도보 거리에 있는 데다 서울역 및 주변 호텔에서도 접근성이 좋다. 관광객은 명동에서 화장품을 산 뒤 남대문시장에 들르거나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시장을 찾는다.
상품도 다양하다. 남대문시장상인회에 따르면 시장에는 식품과 주방용품, 아동복, 완구, 목욕용품, 액세서리 등을 취급하는 점포 약 1만 개가 미로처럼 들어서 있다. 김을 산 뒤 아동복을 고르고, 다시 골목을 돌아 그릇과 때 타월도 살 수 있다. 같은 품목도 점포마다 소재와 크기, 무늬가 달라 여러 가게를 돌며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먹거리로 이름난 광장시장과는 방문 목적이 다르다. 서울AI재단이 외국인의 구글맵 후기를 분석한 결과 광장시장에서는 음식과 분위기, 남대문시장에서는 상품과 구매 관련 언급이 많았다. 외국인에게 광장시장이 먹거리 체험 공간이라면 남대문시장은 현지인이 사용하는 물건을 찾아 사는 쇼핑 공간인 셈이다.
외국인이 남대문시장을 찾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최근 달라진 것은 방문객의 연령과 쇼핑 방식이다. 캐릭터 문구와 잡화를 파는 한 상인은 “최근 상호와 상품 사진을 들고 오는 10·20대 개별 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길잡이는 SNS다. 일본어 SNS 게시물에는 추천 상품과 판매하는 건물, 층수, 찾아가는 동선까지 정리돼 있다. ◇SNS 타고 뜬 ‘발품 쇼핑’남대문시장이 외국인이 몰려드는 핫플레이스로 떠오르자 국내 젊은 층도 남대문시장을 찾고 있다. 소셜 데이터 분석업체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5월 남대문시장 블로그 언급량은 8591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언급량은 전년 동기보다 약 14% 늘었다.
온라인 쇼핑몰과 다른 진열 방식이 시장의 매력이다. 안경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물건을 정갈하게 늘어놓기보다 일부러 여러 제품을 섞어 쌓아둔다”며 “시장다워 보이고 손님에게 찾는 재미를 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남대문에서 인기를 끈 제품이 백화점에서 팔리기도 한다. 롯데백화점의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시시호시’는 6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남대문 그릇 상가의 ‘현대기물&박그릇’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2주간 구매 고객이 2만 명에 달했고 매출은 예상보다 210% 더 많았다.
SNS가 현대식 대형마트와 e커머스에 밀린 전통시장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화면에서 물건을 발견한 소비자가 골목을 찾아가 직접 사고, 그 경험을 다시 SNS에 올리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고 있다”며 “도매상이 물건을 떼던 남대문시장이 외국인은 K생활을 쇼핑하고 국내 젊은 층은 취향을 발굴하는 색다른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윤지 기자 yunto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