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걷어차고 우군 확보…계산기 두드리는 빅테크들

입력 2026-09-18 17:27
인공지능(AI) 속도 조절을 주장한 빅테크가 뒤에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대규모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투자비를 줄이려는 의도를 갖고 있거나 경쟁사 추격을 막고 규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백악관에서 AI 규제기관 설립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으나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의 반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스페이스X와 메타는 독자 AI 모델을 개발 중이지만 앤트로픽·오픈AI에 비해서는 아직 성능이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AI 규제가 도입되면 선두권 진입이 가로막힐 수 있는 ‘후발주자’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AI칩을 공급하는 엔비디아에는 개발 속도 둔화가 학습·추론용 컴퓨팅 수요 증가세를 약화할 수 있다는 사업상 이해관계가 있다.

이들은 AI업계 자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에 대한 우려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현재 AI 규제론을 가장 선명하게 내세우는 앤트로픽 등이 일부 평가기관에 자금을 지원하는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앞서 앤트로픽은 ‘모델 평가 및 위협 연구소(METR)’같은 제3의 기관을 통해 출시 전 AI모델을 평가하자고 제안했다.

업계는 METR이 앤트로픽과 금전적·사적 관계로 얽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METR의 모태인 AI 안전연구기관 ARC는 자선기관 코이피션트기빙의 지원을 받았으며, 코이피션트기빙은 홀든 카노프스키가 앤트로픽 공동창업자인 다니엘라 아모데이의 남편이 세웠다는 주장이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의장이 “미국 주도의 첨단 AI 표준기구를 설립하자”고 제안한 것도 특정 기관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허사비스 의장은 연방정부 감독 아래 민관협력 또는 자율규제 형태의 표준기구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미 금융산업규제국(FINRA)을 사례로 들었다.

아마존은 이날 “AI 모델은 엄격한 테스트와 강력한 안전장치를 거쳐 출시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개발 속도를 늦추는 데는 선을 그었다. 안전성에 대한 책임은 AI 개발사에 넘겼다는 해석이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