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매력…태국에서 소 보다 돼지가 우선인 이유 [신예희의 나홀로 한입여행]

입력 2026-09-29 09:20
수정 2026-09-29 09:29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치는 고기는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소고기다. 입맛도 취향도 제각각이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대접해야 할 때나 대접받을 기회가 있을 때면 자연스레 소고기를 떠올리게 되니 말이다. 인기 있는 만큼 맛도 좋고 값도 꽤 비싸다. 하지만 태국에선 좀 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한우 맛을 마음에 품은 채로 태국 소고기를 한 점 먹으면 열에 아홉은 실망할 거다. “뭐야, 이 질기고 뻑뻑한 고기는?” 소고기 맛은 마블링이 크게 좌우하는데, 태국 소고기는 기름기가 없어도 너무 없다. 기름지다고 무조건 맛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다. 워낙 날씨가 덥고 습하니 이 나라의 소들은 굳이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지방층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란다.

사육 환경도 우리와 많이 다르다. 대부분의 소 사육 농가가 소규모로 운영되며 기후에 맞게 소를 방목한다. 운동량이 많으니, 체지방이 쪽쪽 빠지는 것이다. 사료 역시 옥수수와 콩 등 칼로리 높은 곡물이 아니라 풀을 자유롭게 뜯어 먹게 한다. 이래서야 원, 근육만 남을 수밖에. 그뿐만 아니라 소규모 축사를 운영하면서 숙성용 저장고까지 설치하기엔 무리라, 도살 후 숙성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판매해서 육질이 질기다. 최근엔 현대식 축사 시스템을 도입한 대규모 축산농가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스테이크 하우스 등 소고기 요리 전문점에선 미국, 호주 등의 수입산 소고기를 내세워 광고한다. 설명이 너무 길다고?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태국에선 돼지와 닭이 훨씬 맛있다.


우선 돼지고기 요리부터 골고루 맛보자. 돼지고기는 태국어로 무(???)다. 음식 이름에 무가 들어간 걸 찾으면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족발 덮밥 카오카무(?????????)로, 족발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카오카무를 반가워할 것이다. 우리의 족발은 껍질 부위가 탱글탱글해 질겅질겅 씹는 맛이 있는 데 비해 카오카무는 흐물거린다 싶을 정도로 아주 부드럽게 조려 만든다. 하지만 느끼하거나 하진 않고,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기분 좋게 넘어간다.


조림 국물에선 오향과 계피, 후추, 생강 등 익숙한 향기와 더불어 뭔가 살짝 다른 뒷맛이 느껴진다. 우리가 쓰는 설탕 대신 팜 슈가를 넣기 때문이다. 야자나무의 커다란 꽃줄기에 상처를 내어 수액을 모은 다음 은은한 불에서 오랫동안 달달 달여가며 수분을 날려서 굳힌 게 팜 슈가다. 달이는 과정에서 은은하고 깊은 불맛이 밴다. 설탕에서 불맛이라니? 알쏭달쏭하다면, 조청을 떠올려보자. 그저 달기만 한 게 아니라 누룽지나 캐러멜에서 날 법한 구수하게 착 감기는 깊은 향. 팜 슈거는 조청과 꽤 닮았다. 카오카무를 주문하면 커다란 칼로 족발을 쿵쿵 썰어 밥 위에 넉넉히 올리고, 조림 국물을 훌훌 끼얹어준다. 찰기가 없는 길쭉한 쌀밥이 흐물거리는 족발 살점과 잘 어울린다.


이번엔 모두가 사랑하는 무삥(???????) 차례다. 낮이고 밤이고, 길거리고 시장이고 할 것 없이 어디선가 달달한 숯불 양념갈비 냄새가 날아온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발원지를 냉큼 찾아보자. 분명 가까운 곳에서 꼬치에 꿴 돼지고기를 숯불에 올려 앞뒤로 부지런히 뒤집어가며 굽고 있을 테니까. 무삥은 말이 필요 없는, 한국인의 심금을 마구 울리는 음식이다. 얇고 넓적하게 포 뜨듯이 손질한 돼지고기를 간장과 마늘, 코코넛밀크 등을 섞은 양념에 푹 재워뒀다가 구운 거라 달콤 짭짤하고 향기롭다.

이것만 뜯어먹어도 참 맛있는데, 쫀쫀한 찹쌀밥 카오니여우(??????????)랑 한 입씩 번갈아 먹으면 여기가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 싹 잊게 된다. 태국 사람들은 찰기 없는 쌀 못지않게 찹쌀도 많이 먹는데, 이 역시 길쭉한 장립종이다. 먹기 좋게 식혀서 한 주먹씩 나누어 비닐에 담아서 판다. 나는 태국 음식이 아직 좀 어렵다는 사람을 만나면 말없이 무삥 노점으로 끌고 간다. 한 손에는 무삥 꼬치 두어 개, 다른 손에는 찰밥 한 덩어리를 쥐여주면 게임 끝이다.



삼겹살 애호가에게는(실은 내가 바로 그 애호가다) 무껍(???????)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삼겹살을 큼직한 덩어리째로 바짝 튀겨서 잘라 먹는 거다. 기름진 부위를 기름에다 튀기다니 몹시 느끼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무껍은 그냥 튀기는 게 아니라, 일단 껍질이 실하게 붙은 삼겹살 덩어리를 삶거나 쪄서 기름기를 뺀 다음 포크나 꼬챙이로 껍질을 꼼꼼히 찔러 촘촘한 구멍을 내야 한다. 그다음 껍질에 식초를 듬뿍 바르고, 소금도 넉넉히 뿌려 잠시 마르게 놔두면 준비 완료. 드디어 튀길 차례다.

커다란 솥에 기름을 콸콸 붓고 높은 온도에서 손질해 둔 삼겹살을 튀기는데, 미리 발라둔 식초와 소금 덕에 껍데기 부위가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기름을 흡수하긴커녕 오히려 촘촘하게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고기 속의 기름과 수분이 밖으로 흘러나와 겉은 엄청 바삭하고 고소하게 익고, 속살은 놀랄 만큼 촉촉하고 담백해진다. 이럴 수가. 한번 이 맛을 보고 나면 무껍 노점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뛴다. 껍질이 풍선처럼 한껏 부푼 노릇한 삼겹살 덩어리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다. 무껍은 그냥 고기만 집어먹어도 좋고, 공심채나 케일 등의 푸릇한 채소와 함께 재빨리 볶거나 국수 위에 토핑으로 올려도 참 맛있다.



돼지고기를 충분히 맛보았으니, 이번엔 닭고기 차례다. 닭고기는 태국어로 가이(???)라고 한다. 우선 튀김부터 도전해볼까? 그 전에 진지하게 선언하는데, 최고의 닭튀김은 뭐니 뭐니 해도 K-치킨이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닭튀김을 먹어본 결과, 아직 우리 것을 능가하는 건 찾지 못했다. 하지만 태국에 왔으니 태국 치킨도 먹어봐야지. 정식 이름은 가이텃(??????). 노점이나 식당, 쇼핑몰의 푸드코트 등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인기 메뉴다. 밑간한 닭고기를 쌀가루와 튀김가루를 섞어 만든 반죽을 입혀 두 번 튀긴다.

포인트는 밑간 양념인데, 어지간한 태국 음식 양념에 빠지지 않는 피시 소스인 남쁠라(??????)가 넉넉히 들어가 감칠맛이 좋다. 고수 뿌리 짓이긴 것도 넣어 향을 내고, 다진 마늘과 후추도 팍팍 뿌린다. 들어간 재료만 봐도 입에 착 붙을 것 같은데, 문제는 온도다. 우리는 치킨 하면 갓 튀겨내어 아주 바삭하고 뜨거운 걸 기대하지만, 가이텃뿐 아니라 태국의 튀김 요리는 으레 상온 정도로 식은 걸 준다. 통삽겹살 튀김 무껍도 마찬가지다. 국수나 커리 등의 국물 요리마저 미지근하다. 워낙 날이 더우니 소비자가 굳이 뜨거운 음식을 찾지 않아, 일부러 좀 식혀서 파는 거라나. 대신 튀김옷에 쌀가루를 섞기 때문에 식어도 눅눅해지지 않고 오랫동안 바삭한 게 특징이다. 그렇구나.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좀 아쉽다.


대신 가이양(???????)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가이텃과 더불어 태국의 2대 닭요리라고 해도 될 만치 사랑받는 요리다. 생닭을 반으로 갈라 대나무 틀에 단단히 끼워서 약한 숯불에 올려놓고 오랫동안 굽는 거다. 어지간한 고기는 숯불에 구우면 다 맛있으니, 가이양 역시 이미 약속된 맛이다. 알쏭달쏭하다면 우리가 익히 아는 야들야들한 전기구이 통닭을 떠올려 보자.

거기에 훈연향이 깊이 배어들고, 다양한 향신료의 풍미가 폴폴 풍기기까지 하니 최고다. 가이텃을 밑간할 때와 비슷하게 피시 소스 남쁠라와 고수 뿌리, 생강, 마늘, 후추, 설탕 등의 기본양념에다가 레몬그라스와 강황 등의 향신료를 더하는데, 특히 레몬그라스의 존재감이 굉장하다. 많이 넣어서 그런 게 아니라, 워낙 조금만 넣어도 강력한 향을 풍겨서다. 새큼하고 얼큰하고 화려한 국물 요리인 똠얌꿍의 풍미도 레몬그라스에서 나온다.


가이양은 보통 반 마리 또는 한 마리씩 파는데, 이때 닭만 주문하면 너무 아쉽다. 가이양은 솜땀과 찹쌀밥까지 3종 세트로 먹어야 진짜다. 솜땀(?????)은 덜 익은 초록색의 단단한 파파야 속살을 가늘게 채 쳐서 고추와 말린 새우, 레몬즙 등으로 매콤새콤하게 무친 음식이다. 생김새도 맛도 왠지 무생채가 떠오른다. 숯불 향과 향신료 냄새 폴폴 나는 쫀득한 닭고기를 덥석 물어뜯고, 맵고 산뜻한 솜땀과 향기롭고 쫀득한 찰밥을 번갈아 먹다 보면 어느새 음식에 완전히 집중하게 된다.



튀긴 닭과 구운 닭을 골고루 맛보았다면, 이번엔 삶은 것 차례다. 까오만가이(??????????), 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태국 닭 요리가 바로 이거다. 까오는 쌀, 만은 기름인데, 닭을 푹 삶아 기름진 육수를 낸 다음 그걸로 밥을 지은 거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쌀도 그냥 쓰는 게 아니라 생쌀에 마늘과 생강 등을 넣고 한번 달달 볶아서 밥을 한다. 까오만가이를 주문하면 큼직한 접시에 요 윤기 도는 맛있는 밥을 담고, 야들야들한 닭고기 살을 칼로 퉁퉁 쳐서 밥 위에다 푸짐하게 얹어준다. 고기도 고기인데, 밥이 일품이다. 한입 먹어보면 딱 아는 맛이다.

마늘과 닭 국물의 향이 깊이 배어있어 삼계탕이나 닭백숙이 절로 떠오르는 반가운 맛. 접시엔 오이도 몇 조각 담아주는데, 처음엔 탕수육이나 깐풍기 접시의 파슬리처럼 그저 장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궁합이 기막히다. 향그럽고 쫀득하고 기름진 밥과 고기를 먹는 사이사이에 요 오이를 씹으면 상큼하고 개운하고 시원하다. 곁들여 나온 닭 국물까지 먹으면 완벽한 한 끼 완성이다.


그런데 아직 소개하지 않은 게 있다. 바로 까오만가이 소스. 태국 음식이야 워낙 다양한 소스를 곁들이는 재미가 있으니 까오만가이라고 뭐 다를까 싶지만, 다르다. 급이 다르다. 태국 된장에 라임즙, 생강, 설탕, 식초, 태국 간장, 마늘, 고추 등을 가게마다의 비율로 절묘하게 섞은 거다. 태국 된장인 타오찌아오(??????????)는 연한 황토색이 돌고, 콩을 으깨지 않아 입안에서 가득 씹힌다. 우리의 된장과 비교하자면 덜 짜고, 좀 묽은 편이다. 까오만가이 가게에선 여기다 닭 국물을 적당히 섞어 농도와 염도를 먹기 좋게 조절해, 듬뿍 끼얹어 먹어도 짜지 않다. 은은하고 구수하고 친숙한 풍미. 일단 맛을 보면, 집에 갈 때 요 된장도 한 병 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렇게 돼지와 닭 요리를 몇 가지 꼽아보니, 새삼 태국 음식이 우리 입에 잘 맞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달짝하고 간간하게 양념해 맛있게 굽거나 튀기거나 삶은 고기를 하얀 쌀밥과 함께 먹는 데다, 매콤새콤한 소스까지 곁들이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태국 여행은 가도 가도 계속 가고 싶어진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