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 왜 소리 질렀어요"…직장서 벌어진 '초유의 사태' [김대영의 노무스쿨]

입력 2026-09-19 18:00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사람이 피신고인을 직접 앞에 앉혀둔 채 조사를 진행했다. 회사 측 관계자 4명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신고자는 "저한테 왜 소리를 질렀느냐"고 물었다.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을 부인한 피신고인을 향해선 "거짓말 한다"며 몰아세웠다. 이렇게 조사를 받은 피신고인 9명은 결국 모두 징계를 받았다. 이들은 조사 절차 자체가 객관성을 잃었다면서 노동청으로 향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사람이 피신고인을 직접 조사한다면 어떨까. 최근 한 협동조합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협동조합 근로자 A씨는 피신고인 9명이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고 핸드폰을 던졌다면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피신고인들은 A씨가 먼저 소리를 지르며 따졌고 밖으로 나가자고 했을 뿐이라고 맞섰다.

이 가운데 한 명은 핸드폰을 책상에 내려놓은 사실은 인정했다면서도 "던지지는 않았다"고 항변했다. 또 다른 한 명은 당시 현장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고 주장했다.

19일 노동실무 연구모임 흥미로운연구소에 따르면 통상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될 경우 회사 인사담당자나 외부 조사자가 신고인·참고인·피신고인을 차례로 조사한다. 이어 증거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파악한다. 하지만 이 협동조합에선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사용자 측 4명이 입회한 자리에서 신고자인 A씨가 직접 피신고인들을 상대로 질문하는 방식을 택했다.

피신고인 측 설명에 따르면 A씨는 "0월 0일 어디에서 신고인에게 소리 지른 적 있느냐"는 식으로 묻는 대신 "저한테 왜 소리를 질렀느냐"고 질문했다. 피신고인이 부인하면 "거짓말 한다"고 공격하기도 했다는 것.

피신고인들은 조사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사용자에게 법에 따라 직접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협동조합 이사장이 '신고인이 원하는 방식'이란 이유로 이 같은 조사 방식을 승인했고 "거짓 증언을 하면 가중 처벌된다"고 말했다는 게 피신고인 측 주장이다.

협동조합은 피신고인 9명 모두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이유로 징계 처분을 내렸다. 수위는 경징계였지만 피신고인들은 조사 과정과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관할 노동청에 진정을 냈다. 관할 지방노동위원회에도 부당징계 구제신청을 제기할 예정이다.

쟁점은 '객관적 조사'가 이뤄졌는지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거나 발생 사실을 인지할 경우 지체 없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사실 확인을 위한 객관적 조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피신고인 측은 신고자가 직접 상대방을 조사한 방식이 객관적이지 않은 데다 사용자가 실시한 조사로도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같은 방식의 조사를 거쳤을 경우 직장 내 괴롭힘 성립 여부도 불분명해진다.

함연경 노무법인 시선 노무사는 "조사가 객관성을 가지려면 조사자가 어떤 예단을 가져서는 안 된다"며 "당사자인 신고자에게 객관적 조사를 기대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함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해선 신고인이 진정인이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객관적 조사의무를 위반할 땐 피신고인 또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하려면 지우 또는 관계상 우위를 이용해야 한다"며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이 있더라도 우위를 이용한 게 아니라면 직장질서 침해 등 다른 징계 사유를 구성할지언정 직장 내 괴롭힘엔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