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규제해야" vs "혁신 막힌다"…트럼프 설득전 벌어진 백악관

입력 2026-09-18 08:28
수정 2026-09-18 08:37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내부에서 인공지능(AI) 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다. 사이버공격과 생물무기, 핵심 인프라 위협을 우려하는 고위 참모들은 안전장치 강화를 요구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일부 기술업계 인사들은 중국과의 경쟁을 이유로 최소 규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1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백악관 비서실장 수지 와일스와 재무장관 스콧 베선트 등 고위 당국자들은 최근 수 개월간 거의 매일 AI 위험과 규제 방안을 논의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다 적극적인 감독 필요성을 설득해왔다. 오픈AI의 샘 올트먼과 앤트로픽 경영진 등과도 정기적으로 통화하며 우려 사항을 논의했다.

갈등은 지난 5월 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AI 고문이 AI 모델에 장기간의 정부 심사를 적용하는 행정명령을 막으면서 본격화했다. 와일스는 색스가 막판 통화로 트럼프를 설득했다고 주변에 전했고 베선트는 AI 기반 사이버공격이 미국 금융시스템에 큰 피해를 줄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후 와일스와 베선트의 요구로 트럼프는 규제 강도를 낮춘 별도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행정부 내에서는 와일스와 베선트, 숀 케언크로스 국가사이버국장이 정부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쪽에 서 있다. 반면 벤처투자자 출신인 색스와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엔비디아의 젠슨 황 등은 트럼프에게 현재의 가벼운 규제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까지 가세한 빅테크 측의 영향력은 최근 자율규제 기구 구상에서도 나타났다. 저커버그와 황, 머스크는 업계가 자금을 대는 규제기관 설립안에 우려를 제기했고 트럼프와 각각 직접 접촉해 계획을 사실상 멈춰 세웠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색스는 특히 백악관 내부 갈등의 중심에 있다. 그는 초기 AI·암호화폐 총괄 역할에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색스는 특별 정부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이해충돌 규정에 따라 자신이 운영하는 벤처투자회사의 AI 투자 일부를 처분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그의 회사는 수십억달러 규모의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며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여러 AI 스타트업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 메타와 팔란티어, 에어비앤비에도 투자했다.

색스는 지난 3월 AI·암호화폐 총괄 자리에서 물러난 뒤 백악관 기술자문위원회 공동의장을 맡았다. 그러나 최근 6개월 동안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행정부가 초기에 이를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우려가 내부에서 커졌다고 WSJ는 전했다.

백악관의 경계심을 높인 계기 가운데 하나는 앤트로픽의 고성능 AI 모델 ‘미토스’였다. 올해 봄 미토스의 성능이 공개되면서 이 모델이 사이버공격과 국가안보 위협에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한 고위 당국자는 이를 백악관 내부의 “경고등”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7월 오픈AI의 수백개 AI 에이전트가 협력해 허깅페이스를 해킹한 사건도 통제 불능 모델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이후 백악관은 AI 기업들과 규제 문제를 놓고 반복적으로 충돌했고 일부 기업 경영진은 행정부 실무진을 거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의견을 전달했다.

백악관은 AI를 이용한 공격이 상·하수도나 전력 같은 미국의 지역 기반시설에 피해를 줄 가능성도 분석하기 시작했다. JD 밴스 부통령을 포함한 일부 당국자들이 이런 위험을 우려하고 있으며 평가 과정에는 국가안보국(NSA)과 중앙정보국(CIA)도 참여했다. AI가 생물무기 제작에 활용될 가능성을 다루는 회의에는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을 앞서고 경제성장을 끌어내려면 AI 개발과 데이터센터 건설을 더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AI와 데이터센터에 대한 반대 움직임을 “중국만 좋아할 음모”라고 주장하며 “AI에서 이기는 자가 승리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책이 추진됐다가 중단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AI 업계도 혼란을 겪고 있다. 반대로 백악관 관계자들은 AI 기업들이 정부에 규제를 요구하면서도 개별 정책에는 반대하고 CEO들이 트럼프에게 직접 연락하는 등 엇갈린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밴스 부통령도 이번 주 프런티어 AI 기업들이 정부에 자신들을 규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이 “트로이 목마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행정부도 일부 위험에는 우려를 갖고 있지만 규제를 현명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