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부터 어떻게 판매까지 이뤄질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괜히 이런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는 게 아니에요."
한 예능 콘텐츠 제작사 대표의 고백이다. 방송에서 화제가 된 메뉴를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곧바로 만나는 일이 낯설지 않아졌다. 예전에는 인기 메뉴가 방송 후 몇 달이 지나야 상품으로 나오거나, 아예 상품화되지 않고 화제성만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제작 단계부터 상품 출시를 염두에 두고 기획하거나, 방송 공개와 거의 동시에 판매가 시작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콘텐츠와 상품, 판매 시점의 간격을 최대한 좁혀, 방송의 화제성을 등에 업고 판매까지 이뤄지도록 하는 전략이다.
KBS 2TV '신상출시 편스토랑'은 이런 구조를 가장 오래 이어온 사례다. 스타들이 자신만의 레시피로 메뉴를 선보이고 평가단의 선택을 받은 메뉴가 방송 다음 날부터 곧바로 상품으로 나온다. 지난 7일 출시된 '김용빈의 대파김치' 역시 3일 방송에서 우승자 호명 이후 4일 만에 출시까지 이뤄졌다. 당시 시식에 나선 양지은은 "머릿속이 온통 대파김치로 가득 찼다"고 극찬했는데, 시청자들도 곧바로 이를 맛볼 수 있도록 한 것.
'편스토랑' 협업사인 아워홈은 올해 1월 "협업을 시작한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자사몰(아워홈몰) 신규 가입자는 109% 늘고, 매출은 111% 성장했다"고 밝혔다. 특히 방송에서 화제가 된 김재중의 나폴리식 갈비덮밥, 이정현의 대파크림 파스타, 찬또배기 도가니 육개장 등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인기를 모았다.
유튜브 예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라꼰즈'의 웹예능 '파김치갱'은 김풍, 침착맨, 빠니보틀, 곽튜브, 키드밀리 등 5명 크루가 파김치 사업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았다. CJ ENM 커머스 부문 CJ온스타일은 이들과 손잡고 '김치 프로젝트'를 시작해, 멤버들이 레시피를 개발하고 김치 명인 박미희 대표의 검증을 받는 과정, 판매 전략을 세우는 모습까지 유튜브로 먼저 공개했다.
상품이 정해진 뒤 콘텐츠를 붙인 게 아니라 파김치를 직접 만들어보자는 멤버들의 아이디어에서 상품 개발이 시작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전 예약 물량 500세트는 2일 만에 완판됐고, 판매 방송은 CJ온스타일 TV라이브와 유튜브 파김치갱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지난달 tvN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 역시 CJ프레시웨이와 협력으로 방송 다음 날 바로 인천공항 푸드코트에서 화제의 메뉴를 맛볼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방송에서는 '공항의 아침'이라는 타이틀로 인천공항 푸드코트에서 각기 다른 메뉴로 장사 대결에 나선 셰프들의 모습이 그려졌고, 방송에서 우승을 차지한 정호영, 송훈 셰프의 '황제 황태 해장국' 외에 이성훈 셰프의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 2종, 김훈·김종인 셰프의 '고기듬뿍 들기름 김치찌개' 등도 판매를 시작했다.
콘텐츠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상품이 되고, 그 상품을 만드는 과정이 다시 콘텐츠가 되는 구조는 반응이 뜨거울수록 파급력도 커진다. tvN '우주떡집'이 대표적이다.
전남 고흥에서 우주떡집을 운영한 출연진이 롯데웰푸드의 '찰떡아이스'를 먹으며 고안한 신메뉴 '흑임자 토롱아이스크림'을 콘셉트로, 롯데웰푸드가 '찰떡아이스 IN 우주떡집 흑임자인절미'를 내놓는데, 초도 물량 50만개가 출시 5일 만에 동나며 편의점과 마트 곳곳에서 품절 사태가 벌어졌다. 온라인몰 '스위트몰' 예약 판매도 18시간 만에 완판됐다.
이런 흐름은 개별 협업을 넘어 사업 구조로 자리 잡고 있다. CJ온스타일은 최근 유튜브 예능뿐 아니라 K팝 아티스트 IP까지 활용 범위를 넓혔다. 걸그룹 이즈나의 모바일 라이브 방송에서는 '이즈나와 우리만의 비밀공간'이라는 콘셉트로 멤버들의 대화와 미션 수행 모습을 보여주면서 콘서트 VIP 패키지 등 공연 관련 상품과 팬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함께 선보였다. 가수의 콘텐츠를 통해 소통하고 공연 준비 과정을 즐기는 이른바 경험 소비가 K팝 팬덤 사이에서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기획이다.
CJ온스타일 관계자는 콘텐츠 커머스의 핵심을 "유명 IP에 상품을 결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IP의 세계관과 팬들의 관심사를 새로운 경험으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송사와 별개로 IP 사업만을 전담하는 회사도 나왔다. 메리고라운드컴퍼니(MGR)는 tvN '언니네 산지직송'과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의 상품화 권한을 확보하고 기획부터 생산, 유통, 판매까지 전 과정을 총괄한다. '언니네 산지직송'은 방송이 가진 지역성을 살린 농수축산물 상품과 선물세트로,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는 방송에 나온 음식을 밀키트와 냉동식품, 소스 등으로 만들어 순차적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광고판 넘어 '수요 검증 장치' 된 콘텐츠식품업계가 콘텐츠와 상품 개발을 동시에 가져가는 배경에는 신제품 사업의 불확실성이 꼽힌다. 식품은 생산설비와 원재료 확보, 초도 물량, 유통망 입점 등을 미리 결정해야 하지만 출시 전 소비자 반응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반면 콘텐츠 안에서 메뉴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출연자의 시식 반응을 먼저 보여주면 제품이 매장에 나오기 전부터 인지도와 관심을 확보할 수 있다.
유튜브와 OTT의 확산으로 콘텐츠의 수명이 방송 시간에 한정되지 않는 점도 이런 전략을 진행하는 데 유리한 부분으로 꼽힌다. 영상 클립과 숏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이 반복적으로 유통되고, 온라인몰과 라이브커머스를 통해 관심이 생긴 시점에 바로 구매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제작사에는 IP를 광고·판권 수입 외 상품 매출로 확장할 통로가 되고, 식품업체와 유통사에는 신제품에 별도의 이야기를 입힐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다만 방송의 인기와 제품의 장기 흥행은 별개의 문제다. 콘텐츠 화제성이 초기 판매를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재구매는 결국 가격과 맛, 품질이 좌우한다. 콘텐츠 흥행 이후 유사 협업 상품이 한꺼번에 늘어나면 소비자 피로도가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신제품을 선보일 때 이 제품을 얼마나 만들어 어떻게 팔 것이냐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최근에는 기획단계부터 함께하는 프로젝트, PPL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이 이뤄지고 있고, 다양한 프로모션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