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치" 비난 폭주하는데…'계산대' 못 바꾸는 이유 [도쿄나우]

입력 2026-09-16 08:30
수정 2026-09-16 08:55


"슈퍼마켓 계산대 고치는 데만 반년이라니…."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일본의 수치”라고까지 표현한 낡은 POS(판매시점정보관리) 시스템이 식품 소비세 감세의 최대 복병으로 떠올랐다. 일본 정부가 2027년 4월부터 식품 소비세율을 현행 8%에서 1%로 낮추기로 했지만, 대형 슈퍼와 드럭스토어는 세율 변경에 따른 시스템 개조에만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16일 아사히신문 닛케이비즈니스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 대형 유통업체들이 사용하는 POS는 단순한 계산대가 아니다. 재고관리와 회계, 포인트 적립, 가격관리 시스템까지 복잡하게 연결된 경우가 많아 세율을 바꾸려면 전체 시스템의 계산 로직을 함께 손봐야 한다.

문제는 일본의 POS 시스템 상당수가 1989년 소비세 도입 이후 ‘세금이 존재한다’는 전제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부정이나 회계 오류를 막기 위해 세율을 0%로 설정할 수 없도록 만든 제품도 적지 않다. 일부 시스템은 상품가격에 0을 곱하거나 0으로 나누는 계산에서 오류가 발생하도록 설계돼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5월 11일 참의원 결산위원회에서 세율을 유연하게 바꿀 수 없는 이런 ‘갈라파고스식’ 구조를 두고 “일본으로서 부끄럽다”, “한심하다”고 말했다.

실제 업계에서는 식품 소비세를 0%로 낮출 경우 대응에 약 1년이 필요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대형 POS업체 관계자는 기술자를 현장에 파견해 설정과 주변 시스템을 근본부터 고쳐야 하기 때문에 모든 고객사에 대응하려면 인력과 시간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가 당초 여당 공약이던 ‘0%’ 대신 ‘1%’를 선택한 배경에도 이 같은 시스템 문제가 작용했다. 1%라면 기존 8% 세율 체계를 활용한 설정 변경이 중심이 돼 대응 기간을 약 6개월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 슈퍼 라이프코퍼레이션도 시스템 변경과 테스트, 재무·회계 연계까지 약 반년의 준비기간을 예상하고 있다.

감세 이후 가격 설정도 문제다. 일본 식품업체들은 통상 4월과 10월에 가격을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일부 업체가 2027년 4월 감세 직전에 가격을 미리 올린 뒤 세율 인하 효과를 상쇄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 경우 정부가 포기한 세수가 소비자 혜택으로 이어지는 대신 기업 수익으로 이전될 수 있다.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가격 인상 압력이 이미 큰 상황에서 ‘감세 전 선제 인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거론된다.

슈퍼마켓 업계는 매출 증가보다 오히려 제조업체와 소비자 사이에서 가격 협상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슈퍼마켓협회장을 맡고 있는 이와사키 다카하루 라이프코퍼레이션 사장은 “슈퍼 업계에 순풍이라는 식의 논의는 조금 다르다”며 “우리가 마냥 환영하고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2년 뒤 세율을 다시 1%에서 8%로 되돌리는 과정도 부담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꺼번에 7%포인트가 오르는 셈이어서 대규모 사재기와 이후 소비 급감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이 2014년 소비세를 5%에서 8%로 올렸을 당시 증세 직전 치약과 세제 등의 판매가 전년 동월 대비 약 60% 급증했지만, 증세 직후에는 매출이 60~70% 수준까지 급감했다. 계산대 시스템도 1년반만에 다시 뜯어 고쳐야한다.

일본 정부의 식품 소비세 감세는 세율을 낮추는 것만으로 끝나는 정책이 아니다. 수십 년간 복잡하게 누적된 유통업계의 레거시 시스템과 가격 체계까지 동시에 손봐야 하는 과제가 됐다. 다카이치 총리가 ‘일본의 수치’라고 표현한 낡은 POS 구조가 실제 감세 시행의 속도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