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티, '눈물의 문' 장악…"트럼프 계획 산산조각 냈다"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입력 2026-09-13 16:13
수정 2026-09-13 16:26

이란과 연계된 후티 반군(안사르 알라)이 예멘의 홍해 연안 전체를 장악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 측 공습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은 후 동서를 가로지르는 대형 송유관을 폐쇄했다. 이란에 대한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분쟁이 마무리되기는 커녕 사우디와 예멘을 포함한 아라비아반도 전역으로 번져나가는 양상이다.

1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사우디는 이라크에서 시작된 드론 공격 이후 ‘예방 차원에서’ 동서를 가로지르는 파이프라인을 폐쇄했다고 밝혔다. 이라크 내 이란이 지원하는 민병대 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이 거론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마도 이란이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원유공급 차질 예고사우디는 이란이 막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 대신 1200㎞에 달하는 동서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홍해를 통해서 원유를 세계 시장에 공급해 왔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예상보다 빠르게 오르지 않은 것은 이 경로를 통해 공급되는 원유가 하루 400만~500만배럴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쟁 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교역량(하루 약 2000만배럴)의 20~25%에 달한다. 국제 비축유 사용과 홍해 등 대체경로 활용이 결합되면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아래에 머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일 촬영된 코페르니쿠스 센티널데이터의 위성사진에는 사우디 석유를 홍해 방향으로 운반하는 동서 파이프라인의 경로를 따라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찍혔다. 이후 사우디 정부는 파이프라인 폐쇄를 선언했다.

이라크정부는 해당 공격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드론 발사 지점을 찾아 해당 장비를 압수했으며, “이라크가 대리전의 일부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폐쇄조치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어질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송유관 전체를 드론 공격에서 보호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사우디도 대응 전략을 고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후티, 홍해 예멘 연안 장악이란은 대리세력들을 이용해 사우디를 전면적으로 압박하는 양상이다. 사우디 원유의 수출 경로였던 홍해는 예멘 후티 반군(안사라 알라)의 통제권 아래 들어갔다. 후티 세력은 전날 홍해에서 아라비아해로 연결되는 핵심 요충지인 바브엘만데브 해협 일대를 점령했다. 지난 10일 해협 북부 모카 항을 접수한 데 이어 약 하루 만이다.

해협 내 핵심 요충지인 네 개의 섬을 모두 후티가 확보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하는 현 예멘 정부는 지난 10일 마윤섬에서 철수했다. 남아 있던 두 개의 섬인 그레이터 하니시와 레서 하니시도 11일 후티의 통제 하에 들어갔다고 AFP통신은 예멘 군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그는 “(예멘) 서해안에서 우리가 통제하던 모든 것이 함락됐다”고 했다.

후티는 일단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후티의 정치국 위원인 히잠 알 아사드는 지난 11일 인터뷰에서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한 국제 통항은 안전하다. 선박들은 평소처럼 통과하고 있으며, 우려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사우디 등 선박도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이란 외무부는 예멘 분쟁이 후티에 대한 봉쇄나 군사 행동으로 해결될 수 없다면서 짐짓 대화를 촉구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란이 “사우디와 전쟁 중이 아니다”면서 후티 측과 거리를 뒀다. ◆美, 사우디 요청에 불응사우디 정부는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란과의 전쟁에서 발을 빼는 데도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트럼프 정부는 응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미국은 당분간 직접 행동하는 대신 정보를 공유하겠다고만 했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연합군은 공중전으로 후티를 압박하고 있다. 후티 측은 지난 이틀간 사우디 전투기가 129회 공습을 감행했다고 발표했다. 대규모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지상전이 부담스러운 까닭이다. 하지만 이란전에서도 알 수 있듯, 지상전 없이 공중전만으로 결정적인 승리의 순간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이란을 등에 업고 있긴 하지만 이란 정부의 ‘지시’를 받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후티 반군이 이번 기회를 쉽게 놓치지 않으려 할 가능성도 높다. 모하메드 알 바샤 바샤리포트 수석 분석가는 후티 세력이 “나라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면서 예멘 내전이 수단에서처럼 장기화되는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스티븐 워트하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수석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경제를 압박하되, 군사 충돌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택했지만 후티 반군이 그 계획을 산산조각낸 셈”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란 매체들은 이란과 오만이 이날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근거를 마련하는 합의에 도달했지만, 이 합의가 미국의 ‘조건 준수’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해협을 즉각 재개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