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없어도 대박 났다…K드라마 해외서 터진 진짜 이유 [김예랑의 K컬처인사이드]

입력 2026-09-12 12:00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K드라마를 바라보는 시선과 선택 기준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과거 해외 바이어들이 유명 톱스타의 캐스팅 여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판권을 구매했다면, 이제는 배우의 이름값을 넘어 개연성 있는 스토리라인과 독창적인 장르적 재미가 글로벌 흥행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해외 콘텐츠 시장 분석 보고서' 등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어와 시청자들의 K콘텐츠 소비 성향이 단순 인지도 중심에서 서사 구조의 완성도와 장르적 독창성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서도 신규 저작권(IP) 1건 보유가 콘텐츠 기업 매출을 약 12% 증가시키는 효과를 내는 것으로 파악돼, 캐스팅보다 독창적인 IP 확보가 실질적 산업 가치를 좌우하는 지표로 부각됐다.

글로벌 콘텐츠 유통 현장에서 이러한 변화는 더욱 또렷하게 체감된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는 시청자들에게 현실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현실 도피'적 재미와 권선징악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스토리가 큰 호응을 얻는 모양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 내 전체 콘텐츠 중 K콘텐츠가 점유하는 비중은 약 7% 수준으로, 비영어권 시장 내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며 작품 자체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실제로 OTT 시장 데이터를 제공하는 플릭스패트롤의 2026년 2분기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넷플릭스 내 아시아 권역 콘텐츠 선호 비중은 19.3%로 집계돼 직전 분기(18.2%) 대비 성장세를 보였다. 북미 콘텐츠가 58.2%로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는 와중에도, 아시아 콘텐츠를 향한 글로벌 시청자들의 관심은 꾸준히 확대되는 추세다.

김도현 CJ ENM 콘텐츠유통부장은 "글로벌 시청자들이 인정하는 하나의 독립된 카테고리로 K콘텐츠가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며 "해외 파트너사들이 작품을 선별할 때 인지도가 높은 유명 배우의 출연 여부보다 개연성 있는 서사 구조와 특색 있는 장르 결합에 한층 강력하게 매료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B급 연출의 코미디성에 한국 특유의 서사를 결합해 통쾌함을 선사한 '취사병 전설이 되다', 사내 비리를 추적하며 스릴을 안긴 '은밀한 감사', 학교 내 부조리를 바로잡는 정의 구현을 그린 '참교육' 등이 대표적이다. 유명 배우의 인지도에만 기대기보다 완성도 높은 서사로 글로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최근 해외 시청자들은 현실에서 마주하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가볍게 털어낼 수 있는 스토리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며 "악을 벌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한국 특유의 정서가 유쾌한 연출과 만나면서,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관객들에게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무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장르의 한계를 허무는 하이브리드 K콘텐츠의 약진도 눈길을 끌고 있다. 그동안 K드라마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전통적인 로맨틱 코미디에 이종(異種) 장르와 K컬처 요소를 이색 결합한 작품들이 해외 마켓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는 분위기다.

기본 로맨스 장르에 K푸드 요소를 결합해 시각적·문화적 매력을 극대화한 '폭군의 셰프'가 좋은 선례를 남겼으며, 탄탄한 서사에 개성 있는 애니메이션 효과를 접목한 '유미의 세포들' 시리즈 역시 독창적인 포맷으로 주목받았다. 여기에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피카레스크 장르의 '친애하는 X' 등도 K드라마의 장르적 다양성을 확장하며 글로벌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김 부장은 "특정 장르에만 편중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여러 장르가 정교하게 얽힌 특색 있는 하이브리드 포맷에 대한 글로벌 마켓의 관심이 대단히 뜨겁다"며 "문화적 배경이 완전히 다른 타깃층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깊이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는 공감력 있는 스토리라인이 결합할 때 비로소 강력한 파괴력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국 시장의 경우 자국 콘텐츠에 대한 충성도가 유독 높다는 점이 집계 결과로 확인됐다. 올해 2분기 국내 넷플릭스 이용자의 아시아 콘텐츠 선호도(77.9%) 가운데 한국 제작물 비중은 68.91%에 달해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자국 콘텐츠 선호율을 기록했다. 특히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아닌 방송사 및 외주 제작사 지식재산권(IP) 비중이 52.06%를 차지하며, 국내 유통망 및 독자적 제작 생태계가 공고한 영향으로 오리지널 의존도가 낮게 형성된 특성을 나타냈다.

K콘텐츠가 해외 시청자들과 만나는 유통 접점 역시 거대 글로벌 OTT 일극 체제를 넘어 한층 다양해지는 모양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분석한 '글로벌 방송영상 유통 다각화 동향' 보고서에서도 지목했듯, 권역별 거점 로컬 스트리밍 플랫폼 및 지상파 리니어 채널, 무료 광고 기반 스트리밍(FAST) 등으로 유통망을 넓히는 전략이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최근 국내 주요 투자배급사 및 유통사들은 거대 자국 영화 산업(발리우드)이 견고한 인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현지 대형 플랫폼과 손잡고 힌디어, 타밀어, 텔레구어 등 현지어 더빙과 자막을 동시에 제공하며 접점을 넓히는 중이다.

아울러 남미 지역에서는 텔레비사 유니비시온, TV 아즈테카 등 주요 지상파 리니어 채널과의 계약을 통해 TV 시청자층까지 유입시키고 있으며, 중동 지역의 대표 로컬 플랫폼인 MBC 샤히드 등을 통해서도 K드라마가 확산됐다. 북미 등 주요 시장에서도 FAST 채널(광고 기반의 무료 스트리밍 채널) 내 K콘텐츠 전용관 편성이 수백 편 단위로 대폭 늘어나며 접점이 확장되고 있다.

올 하반기 라인업에 대한 해외 파트너들의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배우 김유정 주연의 시대극 첩보물 '100일의 거짓말'과 김우빈 주연의 성장 스포츠물 '기프트' 등 완성도 높은 서사와 신선한 시도를 더한 작품들이 글로벌 마켓의 기대를 모으는 모양새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익숙하고 안전한 틀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와 장르를 개척해 나가는 도전 정신이야말로 글로벌 파트너들이 K콘텐츠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이유"라며 "앞으로도 플랫폼의 경계를 넘어 세계 곳곳의 시청자들에게 K콘텐츠만이 가질 수 있는 독보적인 즐거움과 감동을 다각도로 선사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