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0일 저녁 수원종합운동장에서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여자축구 클럽팀 ‘수원FC위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자축구 클럽팀 ‘내고향여자축구단’과 아시아축구연맹 여자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치르고 있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아니었지만, 각 국가에서 뽑힌 여자축구 클럽팀끼리의 토너먼트 국제경기였다. 이런 사실이 해괴할 리는 없다. 설명은 이제부터다.
수원FC위민 안에는 내고향여자축구단과의 경기에 대한 근심을 미리 피력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북한 여자축구선수들이 남한 여자축구선수들과의 국제경기 중 폭력적 행동과 욕설을 해온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일부(특히 통일부 장관)는 마냥 설레는 것 같았으니, ‘소위’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이 꾸린 공동응원단을 위해 남북협력기금으로 3억1945만원을 의결하고 2억3529만원을 지원했다. 여하간, 경기장 안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페어플레이를, 경기장 스탠드에서는 남과 북 서로의 민족애를 더불어 표현하는 응원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정도가 우리 모두의 정상적인 사고방식일 터였다.
그러나 이 바람은 경기장 스탠드에서부터 산산이 부서졌다. 남과 북의 화합을 위한 공동응원을 명목으로 내걸고 대한민국 혈세까지 거금으로 지급받은 그 진보(?) 시민단체들은 내고향여자축구단만을 향해 일방적인 응원을 열정적으로 보냈다. 반면, 수원FC위민 선수들에게는 냉담과 비난으로 일관했는데 특히 페널티킥을 찰 적에는 야유를 보냈고 골인에 실패하자 환호했다.
90분 경기 내내 수원FC위민 감독과 선수들은 괴로운 혼란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해석하기 힘든 수치심과 환멸이 대한민국의 젊은 여성 축구선수들의 내면에서 들끓었을 것이다. 그녀들은 이런 어두운 감정의 동요가 경기력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러나 결국 수원FC위민은 역전패했고 감독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경기에 져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기가 막혀 가슴이 무너진 사람은 그런 눈물을 흘리게 된다. 경기장 스탠드의 모두가 한반도기를 흔들며 아리랑을 부르는 정도였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부정에 가까운 정신적 린치를 일부(하지만 그날 그 현장에서는 마치 전부처럼 감각되었을) 대한민국 국민들로부터 당한 수원FC위민 선수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퇴장했다. 한편,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인공기를 펼치며 승리를 만끽하자, 진보(!) 시민단체 응원단은 열광했는데 그들은 태극기를 가지고 경기 관람 온 사람들이 태극기 흔드는 걸 저지하기도 했다.
내고향여자축구단은 죄가 없다. 북한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도 탓할 수 없다. 정치범 수용소로 유지되는, 한국 드라마를 본 청소년들을 공개총살시키는 체제에서 살고 있는 그들의 실존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통일부와 통일부 장관, 심지어 저 진보라는 사회과학적 용어가 가당치도 않은 야만적 시민단체들마저 원망하고 싶지 않다. 말릴 방법도 없고, 미워하자니 낙담이 아까운 시대니까. 그러나 두려운 것은, 저런 꼴들을 보고도 매번 대강 ‘그러려니’ 하는 일반 대중이다. 이걸 제대로 심각하게 비판하고 끝까지 책임을 묻는 언론과 정치권도 잘 보이질 않는다. 해괴한 일이 해괴한 것일까, 해괴한 일을 그러려니 넘기는 일이 해괴한 것일까? 정답은 둘 다 해괴하다는 것이고, 후자가 전자보다 더 해괴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개인이나 공동체가 ‘중병(죽을병)’이 들어 있을 적에 나타나는데,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악화돼 간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지난 5월 아시아축구연맹 여자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벌어진 일의 시사점은 통일이나 북한 같은 거대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정말 깨달아야 할 것은, 저런 종북단체들의 정신병적 행위를 혈세로 지원하는 정부에 의해 우리의 소중한 애국심과 깊은 민족애, 인도주의적 화해와 공존, 공정한 가치와 인간으로서의 감성이 유린당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런 몹쓸 경험을 직접 한 것은 대한민국의 젊은 여자축구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우리들 역시 똑같은 일을 당한 것이다. 통증을 못 느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