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콩소르시움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현대미술의 흐름을 잘 안다고 자부해도 좋다. 프랑스 디종에 위치한 미술관 콩소르시움은 유럽의 주요 '강소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힌다. 1990년대 아직 신진 작가였던 피에르 위그와 필립 파레노,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함께 일했고, 영국 작가 마크 레키는 여기서 개인전을 연 이듬해인 2008년 영국 최고 권위 미술상인 터너상을 받았다. 뉴욕타임스가 2016년 "미술의 다음 '대세'를 예측하는 기관"이라고 미술관을 소개했던 이유다.
지금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단체전 '업 어게인스트 더 월스!(Up Against the Walls!)'는 콩소르시움이 엄선한 9명 작가의 작품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내년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미술관이 세계 여러 도시에서 여는 릴레이 전시 중 첫 번째다.
전시장에는 작품 제목이나 작가 이름 등 설명이 전무하다. 오직 작품 뿐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승덕 콩소르시움 디렉터(72)는 "요즘은 미술관 큐레이터 설명보다 인터넷이 더 충실하니, 더 알고 싶으면 전시장에 있는 QR코드를 찍어보면 된다"고 말했다.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는 세계적인 명성의 큐레이터다. '한국 미술 1세대 큐레이터'로 꼽히는 그는 삼성문화재단과 파리 퐁피두센터를 거쳐 2000년부터 콩소르시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013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로 '보따리 작가' 김수자를 내보냈고, 2022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문화예술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문화예술공로훈장(슈발리에)을 받았다. 그는 "전세계 순회전의 첫 번째 도시로 서울을 택한 건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이번 전시 주제는 벽이다.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벽은 늘 그림을 거는 '배경'이었지만, 이번 전시장에서는 벽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된다. 대부분의 작품은 갤러리 공간의 벽에 맞춰 새로 만든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 작가 이사벨라 두크로트(95)가 종이로 만든 가로 5.9m 작품 '테라'가 대표적이다. 김 디렉터는 "50대에 그림을 시작한 탁월한 작가"라며 "2022년 발굴한 작가인데, 다음달 고향인 나폴리의 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대쪽 벽을 장식하는 건 30대 젊은 작가인 아르헨티나 출신의 앙헬라 페라리(36)다. 야생동물, 꽃과 벌레 등을 한 화면에 섞어 그린 대형 삼면화(三面畵)로 벽 하나를 채웠다. 그 옆 복도에는 파리의 디자이너 듀오 M/M이 포스터 42장을 붙여 놨다. 마주 보는 두 벽에 설치된 우고 론디노네(62)의 영상 작품, 존 암리더(78)가 그린 벽화 옆에 트럭 부품을 붙인 설치작품도 나왔다.
현대미술의 첨단을 달리는 작가들을 모아 놨지만, 척 봐도 통통 튀는 작품들이 나와 있어 미술을 잘 모르는 관객도 즐겁게 볼 수 있다. 김 디렉터는 "머리 아프게 공부하려 하지 말고, 일단은 보고 즐기는 게 먼저"라며 "축제에 온 것처럼 즐겁게 본 뒤 더 알고 싶으면 공부하면 된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10일까지, 관람료는 무료.
성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