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압력은 커지고 있는데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전망은 제한적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지만 원유 선물시장은 수개월 뒤 유가가 다시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실질금리가 급등했는데도 주식시장은 강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도이체방크는 이를 ‘시장의 괴리’라고 부르며 지속가능한 상황이 아니라고 경고했습니다.
인공지능(AI) 시장에서도 변화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중국 AI 기업들이 미국의 최첨단 AI 모델을 대규모로 활용해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다고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도체 시장에서는 메모리가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고, HSBC는 미국 AI주뿐 아니라 한국과 대만, 중국의 반도체 및 AI 인프라에도 투자 기회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기업 가운데서는 스타벅스가 브라이언 니콜 최고경영자(CEO) 취임 이후 매출 회복에 성공했지만 수익성 개선이라는 다음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1. 물가는 뛰는데 Fed·ECB 금리 전망은 ‘얕다’도이체방크는 매달 시장에서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가격 움직임과 향후 조정 가능성이 큰 부분을 찾아내는 ‘시장 괴리’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도이체방크는 현재 시장이 견조한 성장과 낮아지는 물가, 제한적인 통화 긴축이라는 이른바 ‘골디락스’ 환경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투자자들이 앞으로 이 같은 상황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면서 이미 주식과 채권 등의 가격에 이를 상당 부분 반영했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기대가 동시에 가격에 반영돼 있다는 점입니다.
채권시장은 앞으로 물가 압력이 상당히 커질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사이클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강한 성장의 혜택은 누리면서 금리 상승이라는 대가는 크게 치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돼 있다는 게 도이체방크의 문제 제기입니다.
도이체방크는 결국 물가가 낮아지거나 시장이 예상하는 금리 인상 폭이 확대돼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두 가지 모두 현실화되지 않는다면 주식과 회사채 같은 위험자산이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공급관리협회(ISM) 서비스업 지수의 구매가격지수가 지난 8월 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도이체방크는 2021년부터 2023년 사이 물가 급등 당시의 관계를 적용할 경우 현재 ISM 서비스업 구매가격지수가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5% 이상과 일치하는 수준이라고 분석했습니다.
Fed 의장의 최근 발언도 매파적이었고 고용지표 역시 예상보다 강하게 나오면서 Fed가 추가로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여지도 커졌습니다.
도이체방크는 특히 2022년 이후 최근 5년 가운데 4년 동안 투자자들이 Fed의 매파적인 움직임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올해 역시 최근까지 시장은 금리 인상 가능성을 거의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논쟁의 초점은 ‘Fed가 금리를 올릴 것인가’에서 ‘얼마나 올릴 것인가’로 이동했습니다. 현재 선물시장에는 60%가 넘는 금리 인상 가능성이 반영돼 있습니다.
도이체방크는 ISM 서비스업 구매가격지수와 CPI의 과거 상관관계를 적용할 경우 인플레이션이 5%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과거 긴축 사이클을 기준으로 보면 이 정도 물가 수준은 첫해 200bp가 넘는 금리 인상과 일치한다는 설명입니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괴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도이체방크는 2027년 6월 유럽중앙은행(ECB) 회의에 대해 시장이 반영하고 있는 금리 수준이 지난 7월 고점과 비교해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크게 상승했고 경제지표도 계속 시장 예상을 웃돌았습니다. 투자자들이 내년 물가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ECB가 금리를 더 많이 올릴 것으로는 예상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도이체방크는 예상보다 매파적인 통화정책이 나타날 위험이 Fed뿐 아니라 ECB에도 존재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원유시장도 비슷합니다.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지만 6개월 뒤 인도되는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여전히 80달러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시장은 앞으로 몇 달 안에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고 원유 공급이 정상화되면서 국제유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같은 백워데이션은 이미 약 6개월 동안 이어졌습니다. 미래 유가가 현재보다 상당히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장기간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당시 시장은 전쟁이 빠르게 끝날 것으로 기대하면서 원유 선물곡선에 강한 백워데이션을 반영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시장의 기대도 바뀌었습니다.
도이체방크는 현재도 비슷한 위험이 있다고 봤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계속 무산된다면 어느 시점에서는 투자자들이 미래 유가 전망 자체를 높여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는 국제유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몇 달 동안 향후 유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주식과 회사채 등 위험자산을 지지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유가 하락 기대가 사라질 경우 위험자산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실질금리와 주식시장 사이에서도 괴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올해 위험자산은 인플레이션 압력과 매파적인 통화정책 위험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강한 흐름을 이어왔습니다. 이란 분쟁 초기에는 일시적인 매도세가 나타났지만 4월 휴전 이후 주식시장은 다시 강하게 상승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10년물 실질금리는 이란 분쟁 이전보다 70bp 이상 상승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실질금리 상승은 주식 밸류에이션에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기업의 미래 이익을 현재 가치로 할인할 때 적용하는 금리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질금리가 상승하는 동안 주식도 함께 올랐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예상보다 강한 세계 경제 성장이었습니다. 강한 성장이 기업 실적과 주가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채권금리도 상승시키면서 두 시장이 동시에 강한 경제를 반영할 수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도이체방크는 1990년대 후반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물가 상승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나타나는 인플레이션 압력의 상당 부분은 중앙은행이 금리정책만으로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비용 상승형(cost-push) 충격입니다. 경제가 강해서 물가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와 식품 등 공급 측 비용이 상승하면서 물가를 밀어 올리는 상황입니다.
이 경우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경제 성장에도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도이체방크는 이런 조합이 과거에도 위험자산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고 지적했습니다.
2022년에는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과 함께 주식시장이 큰 폭으로 조정받았고 회사채 신용스프레드도 확대됐습니다. 2015년과 2016년에도 Fed가 경기 둔화 속에서 금리를 다시 올리기 시작하면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을 통한 부양책이 위험자산을 다시 떠받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재정정책을 통한 부양 여력도 과거보다 줄어든 상태입니다. 국채금리가 이미 수년 만의 높은 수준에 올라 있고 정부부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도 크게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2. “나를 상대로 베팅하라”…베선트의 엔화 개입 자신감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최근 미국과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베선트 장관은 8일 저녁 서던메소디스트대(SMU) 경영대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일본과의 외환시장 개입을 언급하며 “저는 비대칭적인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하우스입니다(I am the house now)”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하우스’는 카지노를 운영하는 측을 의미합니다. 일반 투자자보다 정책 방향에 대해 훨씬 많은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시장과의 승부에서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베선트 장관은 엔화 개입에 대해서도 “우리가 일본 엔화에 개입할 때 저는 일본이 무엇을 할지, 일본은행(BOJ)이 무엇을 할지, 일본 정책당국자들이 무엇을 할지 상당히 잘 알고 있습니다”며 “원한다면 저를 상대로 베팅해도 좋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현재까지 외환시장 개입은 상당한 효과를 거뒀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공동 개입 전 달러당 164엔에 육박했던 달러·엔 환율은 현재 153엔 안팎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만큼 엔화 가치가 급격히 상승했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미국 재무부가 장기 국채를 매입하겠다고 밝힌 뒤 나타났던 국채금리 하락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베선트 장관의 채권시장 개입에 대해서는 그의 멘토인 유명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도 비판한 바 있습니다.
다만 베선트 장관의 ‘카지노’ 비유가 지나친 자신감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의 폴 도너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카지노 비유가 성립하려면 엔화 약세가 투기적인 움직임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엔화 약세가 단순한 투기 때문이라면 정부 개입이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미·일 금리 차와 같은 경제 펀더멘털에 따른 것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설명입니다.
1992년 영국 역시 파운드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액과 금리 인상을 동원했지만 결국 시장의 매도세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베선트 장관 역시 시장의 펀더멘털을 거스를 경우 같은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문제는 엔화 강세가 여기에서 끝나지 않을 경우입니다.
골드만삭스의 리치 프리보로츠키는 베선트 장관의 발언이 미국 주식시장에 미칠 2차적인 영향에 주목했습니다.
핵심은 엔 캐리트레이드의 청산 가능성입니다.
그동안 글로벌 투자자들은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린 뒤 이를 달러 등으로 바꿔 미국 주식이나 채권 등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해왔습니다.
하지만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 이 전략의 수익성은 떨어집니다. 엔화로 빌린 돈을 상환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은 달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엔화 강세가 계속될 경우 미국 주식에서 얻는 수익보다 환율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엔화 강세의 속도입니다.
달러·엔 환율이 160엔에서 150엔으로 수개월에 걸쳐 천천히 내려간다면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을 조금씩 매도하고 엔화를 사들이면서 캐리트레이드 포지션을 단계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움직임이 며칠 사이에 발생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엔화 가치가 단기간에 급등하면 환차손이 빠르게 불어나고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자들은 추가 증거금을 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습니다.
결국 미국 주식 등 보유 자산을 급하게 매도한 뒤 엔화를 사서 차입금을 상환해야 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프리보로츠키는 최근 S&P500과 미국 대형 기술주가 뚜렷한 악재가 없는데도 상승 탄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기업의 실적이나 성장 전망이 악화했다기보다 엔화로 자금을 조달해 미국 주식에 투자했던 캐리 자금이 이탈하면서 주가에 매도 압력을 가하고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분석입니다. 3. 미국 AI를 ‘교사’로 쓴 중국…GPU 수출통제 새 변수
미국 정부가 중국의 인공지능(AI) 기술 추격을 막기 위한 새로운 전선에 나섰습니다.
그동안 미국의 대중 AI 규제는 엔비디아의 최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반도체 제조장비 등 첨단 컴퓨팅 자원의 중국 유입을 차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AI 모델이 만들어낸 ‘답변’까지 새로운 기술 유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 국가안보국(NSA)과 연방수사국(FBI), 사이버보안·인프라보안국(CISA)은 중국의 주요 AI 기업들이 미국의 최첨단 AI 모델에서 능력과 지식을 체계적으로 추출해 자사 모델 훈련에 활용해왔다고 주장했습니다.
미 당국이 지목한 기업에는 딥시크와 문샷AI, 알리바바, 미니맥스, 스텝펀 등이 포함됐습니다.
핵심에는 ‘증류’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증류 자체는 AI 업계에서 널리 활용되는 기술입니다. 성능이 뛰어난 대형 AI 모델을 ‘교사 모델’로 삼아 상대적으로 작은 ‘학생 모델’을 훈련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최첨단 AI 모델에 수학과 코딩, 논리 문제 등을 대량으로 입력하면 고품질 답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확보한 질문과 답변을 학습 데이터로 만들어 다른 AI 모델을 훈련하면 학생 모델의 성능을 높일 수 있습니다.
상대방 AI의 소스코드나 모델 가중치(weight)를 직접 가져올 필요도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상대방의 AI 모델 자체를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AI를 수백만 번 ‘선생님’으로 활용해 방대한 정답지를 만든 뒤 이를 이용해 자신의 AI를 훈련하는 방식입니다.
최첨단 GPU 확보에 제약을 받고 있는 중국 기업 입장에서는 AI 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시행착오의 일부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챗GPT나 클로드는 일반 사용자도 가입해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 AI 기업이 이들 모델에 질문하고 답을 얻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개별 질문만 놓고 보면 사실상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일반 사용자가 Claude에 수학 문제를 묻는 것과 경쟁 AI 업체가 자체 모델의 수학 능력을 높이기 위해 같은 문제를 입력하는 것은 겉으로는 동일합니다.
차이는 규모와 목적, 패턴에서 나타납니다.
수많은 계정을 이용해 수학과 코딩, 추론 문제 등을 체계적으로 입력하고 수백만 건의 고품질 출력을 확보한 뒤 이를 경쟁 모델의 훈련 데이터로 활용한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AI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과 GPU, 전력, 연구인력을 투입해 만들어낸 모델의 능력을 경쟁사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자체 모델에 이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앤트로픽은 지난 2월 딥시크와 문샷AI, 미니맥스가 약 2만4000개의 부정 계정을 이용해 클로드와 1600만회가 넘는 교환을 생성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앤트로픽에 따르면 딥시크는 15만회 이상을 이용했으며 다양한 작업의 추론 능력과 강화학습에 활용할 평가 능력 등을 집중적으로 확보하려 했습니다.
문샷AI는 340만회 이상을 이용했습니다. 에이전트 추론과 도구 사용, 코딩과 데이터 분석, 컴퓨터 사용 에이전트와 컴퓨터 비전 등이 주요 대상이었다는 게 앤스로픽의 설명입니다.
미니맥스는 1300만회 이상으로 규모가 가장 컸습니다. 주요 대상은 에이전트형 코딩과 도구 사용, 여러 도구를 조정하는 능력이었습니다.
무작위로 1600만개의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니라 각 기업이 자사 모델에 필요한 특정 능력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데이터를 확보하려 했다는 게 앤스로픽의 주장입니다.
증류를 통해 학습할 수 있는 것도 단순한 사실이나 문체에 그치지 않습니다. 수학과 코딩, 에이전트 행동, 문제 해결 등 고차원적인 능력도 학생 모델에 학습시킬 수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에 최첨단 GPU 수출을 제한해온 이유 가운데 하나는 최첨단 AI 모델 개발에 필요한 컴퓨팅 자원을 제한하기 위해서입니다.
첨단 GPU 수출을 제한하면 중국의 최첨단 컴퓨팅 자원이 부족해지고 대규모 AI 훈련이 어려워지면서 미국과 중국의 AI 기술 격차를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증류라는 경로가 등장하면서 이 구조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막대한 GPU와 전력,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프런티어 모델을 개발합니다. 중국 기업이 이들 모델에 대규모로 접근해 고품질 수학·코딩·추론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면 미국 기업이 거친 시행착오를 모두 반복하지 않고도 자체 모델의 능력을 높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GPU 수출통제를 통해 중국의 컴퓨팅 능력을 제약하더라도 증류를 통해 독자 개발에 필요한 일부 연구와 연산, 시행착오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미국이 유지하려는 기술 격차 역시 일부 축소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4. 메모리가 비메모리 추월한다…가트너 전망 대폭 상향메모리 반도체가 조만간 전 세계 다른 반도체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특히 기존 예상보다 메모리 시장의 성장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가트너는 지난 4월 2026년 전체 반도체 시장 규모를 약 1조3200억달러로 예상하면서 이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매출을 6330억달러로 전망했습니다. 2027년 전망치는 7480억달러였습니다.
하지만 가트너는 지난 8월 전망치를 대폭 상향했습니다. 2026년 메모리 매출 전망치는 8373억달러, 2027년에는 1조760억달러로 높였습니다.
더 주목할 부분은 메모리 산업의 성장 패턴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메모리는 대표적인 ‘붐 앤드 버스트(boom-bust)’ 산업으로 평가받아왔습니다. 수요가 증가하고 가격이 오르면 업체들이 생산을 확대하고 이후 공급과잉이 발생하면서 가격과 실적이 다시 급락하는 사이클을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높은 실적 변동성 때문에 메모리 업체들은 오랫동안 상대적으로 낮은 밸류에이션을 받아왔습니다.
메모리 매출은 2024년 1600억달러, 2025년 2160억달러로 회복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과거와 비슷한 또 한 번의 메모리 업사이클로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26년부터는 양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메모리 매출이 2025년 약 2160억달러에서 2026년 8373억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불과 1년 만에 시장 규모가 거의 네 배로 커지는 셈입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메모리와 비메모리의 시장 규모가 역전된다는 점입니다.
2025년 메모리는 전체 반도체 매출의 약 27%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2026년에는 이 비중이 54%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불과 1년 만에 두 배로 높아지는 것입니다.
AI 반도체 시장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GPU나 CPU 등 비메모리 반도체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AI 인프라 투자 예산 가운데 메모리가 가져가는 몫이 훨씬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이번 매출 증가가 단순한 판매량 증가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이 매출 증가의 상당 부분을 이끌고 있습니다.
가트너는 2026년 DRAM 매출이 전년 대비 246.6%, 낸드 매출은 371.9%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낸드의 경우 2026년 1분기 매출이 약 480억달러로 직전 분기보다 96% 증가했습니다.
새로운 공장을 대규모로 건설해 생산량을 두 배로 늘려 매출을 확대하는 것과 기존 생산설비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판매가격 상승으로 매출이 증가하는 것은 이익에 미치는 효과가 다릅니다.
가격 상승이 매출 증가를 주도할 경우 추가적인 대규모 설비투자 부담 없이 이익이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과거 메모리 호황은 PC나 스마트폰 판매 등 경기와 제품 교체 주기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수요가 급증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둔화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메모리 수요 역시 구조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공급 측면에서도 과거와 다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거 메모리 사이클에서는 가격이 상승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이 설비투자(CAPEX)를 크게 확대했습니다. 생산능력이 늘어나면서 결국 공급이 수요를 넘어섰고 메모리 가격 하락과 함께 다음 다운사이클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메모리 업체들이 CAPEX를 상대적으로 제한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투자액 가운데 상당 부분도 단순한 생산능력 증설보다는 연구개발과 첨단 메모리 기술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공급업체들이 과거처럼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확대하지 않는다면 이번 메모리 업사이클은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5. “미국 AI주만 보지 마라”…HSBC가 꼽은 한국·대만·중국
HSBC가 AI 투자자들에게 미국의 AI 관련주에만 집중하기보다 실제 수익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밸류에이션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분야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특히 한국 메모리 반도체와 대만 반도체, 중국 본토의 AI 반도체·하드웨어와 반도체 장비, 전력 인프라를 유망한 투자처로 꼽았습니다.
HSBC의 신흥시장 및 글로벌 주식 전략 책임자인 알라스테어 핀더가 이끄는 전략팀은 이들 시장이 수요는 여전히 강한 반면 생산능력이 제한된 분야에 투자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평가했습니다. 밸류에이션 역시 미국 AI 산업의 일부 영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다는 분석입니다.
첫 번째는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업종입니다.
최근 한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조정을 받았지만 HSBC는 업황의 펀더멘털은 여전히 견조하다고 평가했습니다.
AI 인프라를 중심으로 대규모 CAPEX가 이어지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뒷받침하고 있는 데다 기업들의 주주환원도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HSBC는 대부분의 매도 압력이 진정되고 있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매도 압력이 완화되면 주가 변동성이 낮아지고 기업의 자기자본비용도 하락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반도체 업종 전반의 밸류에이션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특히 AI 반도체 시장이 엔비디아의 GPU 중심에서 빅테크의 자체 AI칩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메모리 업계에는 중요한 변화입니다.
구글과 아마존 등 하이퍼스케일러가 자체 AI 반도체 사용을 늘리면 엔비디아의 GPU 시장 지배력에는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고대역폭메모리(HBM) 업체에는 반드시 악재라고 볼 수 없습니다.
GPU뿐 아니라 빅테크가 개발하는 AI용 주문형반도체(ASIC)에도 HBM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대만 반도체 업종에서도 AI 투자의 다음 단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HSBC는 대만에서 AI 투자의 중심이 GPU를 넘어 맞춤형 ASIC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구글의 TPU와 아마존의 트레이니엄처럼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자신들의 AI 서비스에 최적화한 자체 반도체 사용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I 시장이 학습에서 추론으로 확대될수록 이러한 흐름은 더욱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막대한 규모의 AI 서비스를 운영하려면 단순한 연산 성능뿐 아니라 비용과 전력 효율도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주목할 부분은 ASIC의 성장이 HBM 수요 감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AI 서버용 ASIC에 탑재되는 HBM의 글로벌 비트 수요가 2028년에는 2024년의 35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구글의 TPU와 아마존의 트레이니엄 등 하이퍼스케일러가 자체 설계한 AI용 ASIC의 사용과 출하량을 빠르게 늘리는 데다 ASIC 한 개에 들어가는 HBM의 양 자체도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I 모델이 커지고 추론 과정에서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연산 성능뿐 아니라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도 함께 높아져야 합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이에 따라 ASIC 한 개당 평균 HBM 탑재량이 2024년부터 2028년 사이 약 5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결국 ASIC 출하량 증가와 ASIC 한 개당 HBM 탑재량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전체 HBM 수요가 크게 확대되는 구조입니다.
HSBC는 첨단 패키징의 공급 제약에도 주목했습니다. 첨단 패키징 투자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도 생산능력 제약이 지속되면서 가격과 가동률을 모두 뒷받침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중국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기회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HSBC는 중국 내수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하는 AI 반도체와 하드웨어 관련 기업들을 선호한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정부의 정책 지원과 반도체 국산화, AI 추론 시장의 빠른 성장이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산 AI 반도체의 상대적으로 낮은 효율성이 오히려 주변 인프라 시장에는 추가적인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수출 규제로 중국 기업들이 최첨단 해외 GPU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효율이 낮은 중국산 칩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면 동일한 수준의 AI 연산을 수행하기 위해 더 많은 하드웨어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AI칩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패키징과 네트워킹 수요가 함께 증가하고 데이터센터의 전력과 냉각 수요 역시 확대될 수 있습니다.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은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들의 CAPEX 사이클에 상대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반면 중국은 자국 내 AI 투자 확대와 반도체 국산화 정책의 영향을 더 크게 받습니다. 중국 AI 반도체와 하드웨어가 한국과 대만 반도체 투자에 일정 부분 분산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결국 HSBC가 제시한 전략의 핵심은 단순히 한국과 대만, 중국의 AI 관련주를 사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AI 투자에서 돈이 흘러가는 경로 자체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AI 투자 초기에는 엔비디아 GPU가 가장 직접적인 수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자체 ASIC 개발이 확대되고 AI가 학습에서 추론으로 확산하면서 투자 수요는 GPU에서 ASIC으로, 다시 HBM과 첨단 패키징, 네트워킹과 전력 인프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AI 투자에서는 단순히 ‘AI CAPEX가 계속 증가할 것인가’뿐 아니라 막대한 AI CAPEX에서 실제로 돈을 가져가는 기업과 산업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게 HSBC의 분석입니다. 6. 스타벅스, 고객은 돌아왔다…이제 니콜이 증명해야 할 것은 ‘마진’브라이언 니콜 최고경영자(CEO)가 스타벅스(SBUX)를 이끈 지 2년이 됐습니다.
니콜 CEO는 취임 당시 캘리포니아 뉴포트비치의 자택에서 시애틀 본사로 출퇴근할 수 있도록 전용기 이용을 지원받는 조건이 계약에 포함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2년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 ‘절반의 성공’에 가깝습니다.
매장 환경을 개선하고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세계 최대 커피 체인에 고객을 다시 불러들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를 수익성 회복으로 연결하는 작업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니콜이 2024년 9월 CEO에 취임할 당시 스타벅스의 동일매장 매출은 3개 분기 연속 감소하고 있었습니다.
긴 대기시간과 효과가 떨어진 프로모션, 지나치게 복잡한 메뉴 등에 대한 고객들의 불만이 커진 결과였습니다.
취임 이후에도 동일매장 매출은 3개 분기 더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회복세로 돌아섰고 6월 28일 끝난 2026회계연도 3분기에는 동일매장 매출이 7.9% 증가했습니다. 4개 분기 연속 개선세를 기록한 것입니다.
니콜은 단기적인 이익률 개선보다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데 우선순위를 뒀습니다.
스타벅스는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추가 인력을 투입하는 데 수억달러를 사용했고 과거 스타벅스의 강점이었던 ‘커피하우스 분위기’를 되살리기 위해 매장 환경도 개선했습니다.
이 전략은 니콜이 과거 치폴레 멕시칸 그릴(CMG) CEO 시절 사용했던 방식과 비슷합니다. 당시에도 회사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식품 안전 위기 이후 매출을 회복시키면서 ‘브랜드 회생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마케팅 역시 강화했습니다. 최근에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에 스타벅스 제품을 노출시키는 등의 전략도 활용했습니다.
니콜의 CEO 선임이 발표된 날 스타벅스 주가는 24% 급등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약 30% 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S&P500의 약 40% 상승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맥도날드(MCD)와 치폴레 등 일부 경쟁 업체들의 주가가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이제 문제는 비용입니다.
스타벅스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력에만 최소 5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했습니다. 고객 서비스는 개선됐지만 영업이익률에는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2026회계연도 3분기 스타벅스의 영업이익률은 12.9%로 2년 전 같은 기간의 15.8%보다 낮아졌습니다.
특히 최대 시장인 북미에서는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이 21%에서 13.6%로 크게 떨어졌습니다.
아넥스 웰스 매니지먼트의 브라이언 제이컵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투자가 실제로 성과를 낼지는 앞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스타벅스 측은 직원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인 사업 모멘텀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회사는 경영진에게 2027회계연도까지 비용 절감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 연계한 주식 보상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수백 개 매장도 폐쇄했습니다. 한때 스타벅스의 상징적인 매장으로 평가받았던 시애틀 로스터리도 문을 닫았고 본사 인력도 감축했습니다.
중국 사업도 재편했습니다. 스타벅스는 올해 중국 사업의 경영권을 매각했습니다. 저가 커피업체 루이싱 등 현지 경쟁업체에 시장점유율을 빼앗기는 상황에서 성장세를 되살리기 위한 조치입니다.
니콜 취임 이후 지난 2년의 첫 번째 과제가 고객을 다시 매장으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과제는 명확합니다.
늘어난 매출을 다시 이익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동일매장 매출 회복이 일회성 반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직원과 매장에 투입한 5억달러 이상의 비용이 생산성 향상으로 돌아오는지, 그리고 북미 영업이익률을 얼마나 빠르게 정상화할 수 있는지가 앞으로 스타벅스 주가를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