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가까이 가면 비로소 보입니다

입력 2026-09-09 18:35
수정 2026-09-10 00:03
멀리서는 보이지 않던 길이, 가까이에선 보일 때가 있다. 빽빽한 숲도 덤불 사이, 나무 사이마다 오솔길과 바람길이 통해 있기 마련이다. 사람 사는 일도 다르지 않다. 한 걸음 더 다가가 찬찬히 들여다봤을 때 비로소, 막막하던 문제의 해결책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부산 지하철 대연역 바로 근처에 남구 노인복지관이 있다. 많은 어르신께서 대연역을 통해 복지관을 오가신다. 문제는, 복지관으로 향하는 2번 출구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이었다. 2001년 개통 이후 어르신들은 65개나 되는 계단을 힘겹게 오르내리거나, 건너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빙 둘러 복지관으로 가야 했다.

당연히 숱한 민원이 제기됐다. 2020년 6월, 내가 매주 토요일 진행하는 민원행사 ‘국쫌만(국회의원 쫌 만납시다)’에서 받은 1호 민원도 대연역 2번 출구 엘리베이터 설치였다.

“엘리베이터 한 대쯤”이라고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 선배 의원님 몇 명이 노력했지만 20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 오히려 의아했다. 현장을 갔다. 역시 난제였다. 인도가 좁아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공간이 도저히 안 나왔다. 차도를 침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 휠체어에 탄 장애인, 유아차를 끄는 부모님에게는 계단 한 칸이 높은 벽처럼 느껴질 수 있다.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올려다본 계단은 유독 더 까마득하지 않은가. 현장에 가고 또 가고, 수십 번을 갔다. 문득 인도 절반 이상을 차지한 환기구 2개가 눈에 띄었다. 담당 공무원에게 문의했다. 반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은 환풍기 기술이 좋아져서 한 개만 해도 됩니더.”

즉시 공사에 돌입했다. 오래된 환풍기 하나를 철거하고 다른 하나를 신형으로 교체했다. 환풍기 수는 줄었지만, 역내 공기 순환에는 이상이 없도록 했다. 기존 환풍기 자리에는 크기에 맞는 엘리베이터를 그대로 집어넣었다. 이미 환기구를 통해 지하까지 연결돼 있었기에 공사 기간을 줄이고, 비용도 예상했던 10억원에서 6억원으로 대폭 낮출 수 있었다.

2022년, 숙원이던 엘리베이터 문제가 해결됐다. 더 가까이에서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고민한 덕분에, 엘리베이터도 설치하고, 실내공기도 좋아지고, 비용도 줄인,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뒀다. 지금도 많은 분이 엘리베이터를 애용한다. 민원을 제기한 주민은 ‘빅팬’이 됐고 거의 매주 사무실에 찾아와 이런저런 숙제도 안겨준다. 지역 정치를 향한 신뢰가 엘리베이터를 탄 듯 쑥 올라간 것이다.

지역에 내려가 골목을 돌면 “수영아!”, “행님!”하고 웃으며 다가오는 주민들을 만나 뵙는다. 그때마다 밝은 인사 속에 숨은 애환은 없는지, 눈가에 주름이 하나 더 늘지는 않았는지 세심히 살피려고 한다. 세상을 바꾸는 거대담론도 중요하지만, 민생에 더 깊숙이 들어가 오래된 불편 하나를 덜어드리고 주름살을 펴 드리는 일이야말로 정치가 나아갈 길이라고 믿는다. 국민께 더 다가가 혼을 담아 고민하면 답이 보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