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에 밀려 판매 규모가 급감하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가격이 최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저장장치에 생산능력이 집중되면서 범용 저장장치 공급이 줄어든 결과다.
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7~9월 HDD 대량 거래 가격은 3.5인치 1테라바이트(TB) 제품 기준 개당 67.7달러를 기록했다. 전 분기 대비 15% 급등한 것이다. 2.5인치 1TB 제품도 10% 상승한 61.2달러 안팎에 거래됐다. 두 제품 모두 6개 분기 연속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가격 상승의 출발점은 AI 데이터센터다. 글로벌 AI 투자 확대로 데이터센터용 SSD 수요가 급증하자 제조사들이 관련 제품에 생산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데이터센터용 칩 생산에 집중하면서 SSD에 사용되는 범용 낸드플래시 양산이 줄어 가격이 오른 것도 이유다. 이에 따라 PC용 SSD 공급은 감소해 최근 1년간 가격이 3.5배 뛰었다. 이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HDD로 수요가 몰린 것이다.
중국 시장의 수요 회복도 HDD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 중국 감시카메라용 수요는 7~9월에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감시카메라는 고해상도 영상 데이터를 대량으로 저장해야 해 HDD를 SSD로 대체하기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HDD 공급은 장기적인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주요 HDD 제조 업체 시게이트는 최근 일부 저용량 제품의 생산 종료에 나섰다.
시장에서는 AI 인프라 투자가 기존 산업 공급망에 미치는 파급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우선적으로 생산능력과 자원을 흡수하면 범용 제품 공급이 줄고, 가격 상승이 대체재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AI 성장 수혜가 특정 첨단 제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제품의 예상치 못한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니혼게이자이는 “AI 서버에 사용되지 않는 제품조차 AI 투자 붐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