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이용하다보면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I’m not a robot)’는 문항 옆에 박스를 체크하라는 화면이 뜬다. 2000년부터 상용화된 로봇 여부를 확인하는 테스트다. 이름은 ‘캡차(CAPTCHA)’. 이를 본떠 만든 48단계 테스트가 오픈AI의 새 인공지능(AI) 모델 GPT-6 아스트라에 정복됐다. 로봇을 구별하기 위해 개발된 테스트가 로봇에 의해 무력화되면서 신원확인 시스템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존재 의미 없어진 캡차
샤리프 샤밈 오픈AI 개발자는 8일(현지시간) 아스트라가 ‘나는 로봇이 아니야’ 게임 48단계를 모두 해결한 4분짜리 영상을 공개했다. 이 게임은 구글 캡차 시스템을 패러디해 개발했다. 캡차는 ‘컴퓨터와 인간을 구분하기 위한 완전 자동화 공개 튜링테스트(Completely Automated Public Turing test to tell Computers and Humans Apart)’의 약자다.
구글 계정에 접속할 때 사진을 보고 신호등이 있는 부분을 체크하거나, 네이버 접속 시 영수증을 보고 구매한 제품 총 비용을 계산하는 신원 인증 시스템이 모두 캡차에 속한다. 캡차는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이 넘는 크롤링 봇 등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크롤링 봇은 웹사이트를 자동으로 돌아다니며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자동화 프로그램이다.
게임은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라는 문항 옆 박스에 체크하는 간단한 문제에서 시작한다. 이후 ‘월리를 찾아라’ ‘정확도 94% 이상 원 그리기’ ‘딥블루(AI 체스 프로그램) 이기기’ 등 고난도 문제들이 이어진다. 인간이 모든 게임을 푸는 데 2시간 넘게 걸린다. 물론 틀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샤밈은 지난달 오픈AI 코덱스에 스스로 이 문제를 풀게 했지만, 15단계에서 막혔다고 밝혔다. 아스트라는 이를 4분 만에 풀어냈다. ◇에이전트에 바뀌는 신원확인아스트라가 캡차를 뚫으면서 캡차 시스템도 바뀌어야 할 상황이다. 보안업계는 2000년 처음 등장한 캡차의 ‘단순 문제풀이’를 넘어서는 방법론을 고안하고 있다. 구글은 사용자의 의심스러운 활동을 감지하면 휴대전화로 QR코드를 스캔하게 하는 등의 ‘AI 저항 과제’를 쓰고 있다.
지난달 비자에 인수된 사이버보안 스타트업 바이오캐치는 올바른 비밀번호를 입력하더라도 타이핑 속도, 마우스 움직임, 화면을 넘기는 방식 등을 분석해 계정 탈취나 사기 징후를 찾는 ‘행동 신체인식’ 기술을 적용했다.
하지만 크롤링 봇은 여기에 맞춰 이미 진화하고 있다. 봇이 사람처럼 마우스 커서를 곡선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여 탐지 시스템을 속이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브라이언 베커 클라우드플레어 이사는 “봇이 아직 탐지 시스템을 완전히 속이지는 못하지만 그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밝혔다.
크롤링 봇과 달리 선한 봇을 어떻게 가려낼지도 숙제다. 이제는 사용자 지시를 받은 AI에이전트가 호텔을 예약하거나 상품을 구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비자와 클라우드플레어는 AI에이전트가 보내는 요청에 서명을 붙이는 ‘에이전트 신뢰 프로토콜’ 기술을 지난해 10월 공개해 발전시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각 기업용 AI에이전트마다 다른 신원을 부여하는 ‘엔트라 에이전트 ID’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