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제안에 키옥시아 '거절'…한일 낸드 동맹 '엇박자' [강경주의 테크X]

입력 2026-09-09 22:00

SK하이닉스와 일본 키옥시아의 반도체 협력 구상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와 간접 투자 관계에 있는 키옥시아와의 공동 생산을 '유력 선택지'로 거론한 지 일주일 만에 오타 히로오 키옥시아 최고경영자(CEO)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으면서다. 관련 업계에선 낸드 공급망을 넓히려는 SK하이닉스와 샌디스크와의 기존 동맹을 강화하려는 키옥시아의 이해관계가 충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오타 CEO는 인터뷰에서 SK하이닉스와 공동 생산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최 회장이 불과 일주일 전 일본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SK하이닉스와 키옥시아의 생산 협력을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거론한 데 대한 대답이다.

오타 CEO는 키옥시아가 이미 샌디스크와 공동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어 SK하이닉스까지 포함한 3사 생산 협력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키옥시아는 지난달 27일 미국 샌디스크와 함께 향후 6년간 일본에 5조엔(약 43조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테현 기타카미공장에 세 번째 생산동을 짓고 2029회계연도부터 인공지능(AI)용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양산할 계획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투자계획을 환영한다"며 "반도체는 성장 투자의 핵심이자 경제 분야 미일 협력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도 경제산업성 보조금 등을 통해 투자를 최대한 지원할 방침이다.

새 생산동은 이와테현 기타카미시 기타카미공장 부지에 들어선다. 투자 금액은 1조엔(약 8조7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AI 데이터센터의 대용량 저장장치에 사용되는 최신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며 2029회계연도 양산을 목표로 건물과 제조장비를 순차적으로 갖춘다.

키옥시아와 샌디스크는 생산설비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오타 CEO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향후 5조엔 투자액을 키옥시아와 샌디스크가 6 대 4 비율로 부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키옥시아의 투자 몫은 약 3조엔(약 26조1000억원), 샌디스크는 약 2조엔(약 17조4000억원)이 될 전망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그는 SK하이닉스와 샌디스크를 포함한 생산 제휴에 대해 "그냥 '3개 회사가 함께하자'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최 회장이 어떤 배경에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최근 양사의 협력 가능성은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키옥시아와 SK하이닉스는 비휘발성 자성메모리를 공동 개발하고 있으며 키옥시아는 일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에 들어가는 D램을 SK하이닉스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 지분 14.19%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도 보유하고 있다.

앞서 지난 2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최 회장은 인터뷰에서 SK하이닉스와 키옥시아의 공동 생산 가능성에 대해 "하나의 선택지"라고 언급했다. 당시 최 회장은 키옥시아에 대해 "많은 강점을 가진 회사"라고 평가하면서 공동 생산뿐 아니라 연구개발(R&D)과 공급망 공유 등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키옥시아가 미국 샌디스크와 합작회사를 통해 제품을 공동 생산하고 있는 사례를 언급하며 "키옥시아의 미래 전략에 SK하이닉스가 들어간다면 우리는 언제든 파트너가 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양사가 공동으로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도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다만 협력 확대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투자 관계를 정리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최 회장은 "더 이상 어떠한 협력 관계도 구축할 수 없다면 키옥시아에 대한 투자를 종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최 회장은 AI 시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내 신규 생산거점 구축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와 키옥시아의 협력이 현실화할 경우 글로벌 낸드 시장의 경쟁 구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낸드 출하량 기준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가 25%로 1위, SK하이닉스가 22%로 2위, 키옥시아가 14%로 3위다. 단순 합산하면 SK하이닉스와 키옥시아의 점유율은 36%에 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공개적으로 협력 가능성을 열어둔 지 일주일 만에 키옥시아 CEO가 협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파트너십을 고려하면 CEO의 공개 발언치고는 다소 직설적인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태원 회장이 공동 생산을 언급한 것은 키옥시아에 대한 기존 투자를 AI 메모리 공급망과 생산거점 확보로 확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며 "반면 키옥시아는 이미 샌디스크와 협력 체제를 구축한 데다 일본 정부 지원까지 받고 있어 SK하이닉스와 생산 협력을 추가할 실익이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