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서울 도산 스토어를 '도서관'으로 바꿨다. 가방과 신발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책과 편지, 사진, 디저트까지 한 공간에 넣었다. 명품 매장이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소비자가 오래 머물며 브랜드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확장되는 흐름이다.
9일 찾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루이비통 서울 도산'은 도서관을 뜻하는 '라 비블리오테크(La Bibliotheque)' 콘셉트로 새 단장을 마치고 오는 12일 공식 문을 열 준비가 한창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상품 진열대보다 책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책장이 이어지는 복도를 지나면 그라운드층에서 루이 비통의 출판물과 스테이셔너리, 레더 제품을 만날 수 있다. 1층에는 실크와 스몰 레더 제품, 액세서리와 함께 스니커리나, LV 드롭 300 등 신발 제품이 배치됐다.
도서관 콘셉트는 루이비통의 기존 사업과도 연결된다. 루이 비통은 패션 제품뿐 아니라 도시의 문화와 여행 정보를 담은 '시티 가이드(City Guide)'와 사진집 '패션 아이(Fashion Eye)' 등을 출간해왔다. 2024년에는 파리를 다룬 시티 가이드와 '시티 북 파리'를 선보였고, 패션 아이 시리즈를 통해 세계 각 도시와 지역을 사진가의 시선으로 기록해왔다. 지난해에는 브랜드 역사를 406쪽에 담은 '프롬 루이 투 비통(From Louis to Vuitton)'도 출간했다. 도산 매장의 도서관 콘셉트를 최근 젊은층의 독서 유행만 겨냥한 일회성 장치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매장에는 책을 '읽는 경험'뿐 아니라 직접 무언가를 기록하고 남기는 장치도 넣었다. '루이비통 라 비블리오테크' 엽서와 봉투를 활용해 편지를 쓸 수 있는 퍼스널라이즈 공간이 마련됐고, 도서관 책장을 모티프로 꾸민 포토부스에서는 즉석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고가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방문객도 매장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체험 요소를 늘린 것이다.
'서울 그레이·선셋 핑크'…온라인에 없는 한정판서울이라는 지역성은 상품에도 담았다. 이번 매장에서는 '서울 LV 도산' 시그니처를 적용한 매장 전용 스니커즈 2종을 선보인다.
루이비통 관계자는 현장에서 "한정판 스니커즈는 '서울 그레이'와 '서울 선셋 핑크'라는 새로운 색상을 만들어 선보인 제품"이라며 "온라인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이 매장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에서 동일한 제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특정 도시와 매장을 전면에 내건 제품을 내놓는 것은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야 할 이유'를 만드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온라인에서도 주요 제품을 살 수 있는 상황에서 특정 매장에서만 접할 수 있는 상품과 콘텐츠를 배치해 방문 자체에 희소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루이비통이 서울을 독립적인 브랜드 경험의 무대로 활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 4월에는 한강 잠수교에서 브랜드 최초의 프리폴 패션쇼를 열었고, 같은 해 도산공원 인근 이스트도산에서 프리폴 컬렉션 팝업을 운영했다. 당시에도 제품 판매에 카페를 결합했다. 이후에도 도산 스토어는 시즌에 따라 공간과 상품 구성을 바꾸는 방식으로 운영돼왔다. 카페까지 '책'으로…패션·미식 경계 허문다3층 카페 역시 '라 비블리오테크' 콘셉트에 맞춰 다시 꾸몄다. 도서관에서 예상하지 못한 책을 발견하는 경험을 미식으로 옮긴다는 설명이다.
대표 메뉴 가운데 하나인 '라이브러리 크러시 케이크(Library Crush Cake)'는 책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플레이트를 활용한다. 이 밖에 계절 음료와 취향에 따라 조합할 수 있는 커스텀 티 라떼를 판매한다. 편지 봉투를 모티프로 한 '엔벨로프 초콜릿 쿠키'와 인장을 형상화한 'LV 스탬프 마카롱' 등 테이크아웃 전용 디저트도 마련했다.
명품 매장과 식음료의 결합 역시 루이 비통이 국내외에서 확대해온 전략이다. 루이 비통은 2022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 메종 서울에서 국내 첫 카페 팝업을 열었고, 이후 팝업 레스토랑 등을 운영해왔다. 2025년에는 메종 서울에 '르 카페 루이 비통'을 열어 상시 미식 공간을 마련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루이 비통이 미국 뉴욕 57번가에 2024년 문을 연 공간에는 패션 매장뿐 아니라 600권 이상의 책을 갖춘 카페와 초콜릿 매장이 들어섰다. 루이 비통을 보유한 LVMH 그룹은 이 공간을 패션과 문화, 미식을 결합한 몰입형 공간으로 소개했다. 서울 도산의 도서관 콘셉트 역시 이런 글로벌 오프라인 전략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셈이다.
신세계엔 6개층 복합공간…넓어지는 '경험 경쟁'서울에서 루이비통의 오프라인 실험은 도산에 그치지 않는다. 2025년에는 신세계백화점 '더 리저브'에 'LV 더 플레이스 서울'을 열었다. 매장과 문화 공간, 미식을 한데 묶은 6개층 규모 공간으로, 200점 이상의 전시물을 통해 브랜드의 여행과 장인정신 등을 소개했다. LVMH에 따르면 이 같은 형태의 문화 공간은 상하이와 방콕에 이어 서울로 확대됐다.
루이비통이 한국에 첫 매장을 연 것은 1984년이다. 40여 년이 지난 현재 서울에서의 매장 전략은 제품 판매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부티크에서 전시와 출판, 식음료, 도시 한정 상품을 함께 제공하는 복합 공간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번 도산 스토어도 같은 방향을 보여준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적 장치 위에 책과 스테이셔너리, 한정판 스니커즈, 편지 쓰기와 사진 촬영, 카페를 차례로 얹었다. 특히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서울' 한정 제품까지 배치하면서 온라인 구매로 대체하기 어려운 요소를 강화했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이 같은 체험이 실제 제품 구매와 재방문으로 연결되는지가 향후 오프라인 명품 매장의 경험 경쟁을 가늠할 관전 포인트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