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취업공식 뒤집은 AI…고졸은 호황, 대졸은 최악

입력 2026-09-08 18:34
수정 2026-09-09 00:58
미국 청년 고용시장에서 ‘뒤집힌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청년층 고용시장이 20년 만에 최고 호황을 누리는 가운데 대졸 청년 고용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부진했다.

인공지능(AI)산업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성장세로 전반적인 고용시장은 양호하지만 신입 대졸자가 맡던 사무·전문직 인력 수요는 줄어드는 데 따른 결과다. 대학 졸업장이 더 나은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통념도 흔들리고 있다. ◇고용 호황 누리는 비대졸자8일 노동연구기관 버닝글래스연구소에 따르면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22~34세 실업률은 지난 20년 이후 최저 수준에 근접했다. 고령층 은퇴와 이민 감소로 숙련 기능직 인력 부족이 심화한 영향이다.

육체노동 비중이 높고 대면 업무가 많은 직종일수록 실업률이 낮았다. 서비스업, 건설업, 제조업 등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생산·현장직 일자리가 대표적이다. 지난 4일 발표된 고용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달 늘어난 미국 신규 일자리 16만2000개 가운데 음식점·주점 관련 일자리가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반면 대학을 졸업한 구직자는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다. 특히 석사 이상 학위를 보유했거나 과학·기술 분야를 전공한 구직자의 어려움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가드 레바논 버닝글래스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대졸과 비대졸자 구직자가 정반대 상황을 겪고 있다”며 “통상 경기와 상관없이 대졸자와 비대졸자 고용 상황이 비슷한 흐름을 보이던 것과 대비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AI가 신입 사무직원이 맡던 초급 업무부터 대체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카고 채용 업체 하이어웰에 따르면 광고·마케팅 대행사 고객은 최근 신입 직원을 거의 뽑지 않고 있다. 컨설팅 업체 퓨처티 역시 올여름 인턴을 채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SNS에 올릴 문구를 챗GPT로 작성하기로 했다. 빌 발데라즈 퓨처티 최고경영자(CEO)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자녀들에게도 대인관계 능력이 필요하고, 자동화하기 어려운 직업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며 “자녀 중 한 명은 경찰관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WSJ는 “신입 일자리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AI 시대에 기업이 신입에게 요구하는 역량과 대학을 갓 졸업한 구직자가 갖춘 역량 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직장 내 업무 경계도 흐려져AI가 직무 간 경계를 허물고 있는 점도 대졸자 취업 문턱을 높이는 요인이다. AI로 본인 업무를 넘어 다른 전문 인력이 하던 일까지 수행할 수 있게 되자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 범위가 달라지고 있다.

최근 오픈AI가 업무와 관련된 대화 80만 건을 분석한 결과 약 17%가 이용자의 본업이 아니라 다른 직군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본인 직무와 관련된 대화는 22%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이메일 작성, 회의 일정 조율 등 직군과 관계없는 일반 업무였다.

이에 따라 직장 내 업무 수행 방식 또한 바뀌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네덜란드 미디어 기업 광고팀은 AI 도입 전에는 광고 기획자가 아이디어를 구상한 뒤 그래픽디자이너, 사진작가 등 여러 분야 전문가와 협업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최종 결과물을 완성했다. 지금은 기획자가 이미지 생성형 AI 미드저니를 이용해 작업 초기부터 완성도 높은 작업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때문에 디자이너 등의 역할은 AI로 작성한 기획안을 결과물로 구현하는 수준으로 축소됐다. 연구진은 “기획자는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시각화할 수 있게 된 데 만족했고, 의도적으로 동료 업무를 빼앗으려던 게 아니었다”며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동료를 내쫓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게임 제작 기업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디자이너가 코딩을 하고 프로그래머가 이미지 작업을 하는 식이다. FT는 “직업에 따른 업무가 특정 영역에 고착되지 않게 됐다”며 “AI가 서로 다른 직무 간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