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승부하는 식품업계 건강 마케팅

입력 2026-09-08 17:17
수정 2026-09-09 00:53
식품업계에 ‘숫자 경쟁’이 불붙고 있다. 한쪽에서는 당류를 0g까지 낮추고, 다른 한쪽에서는 단백질을 한 병에 40~47g씩 넣는다. 소비자들이 당류와 열량은 낮을수록, 단백질은 높을수록 좋은 제품으로 받아들이면서 생긴 현상이다. 음료에서 시작한 경쟁은 빵과 아이스크림, 과자, 소스, 간편식으로 번졌다. 식품 포장지에 적힌 숫자가 브랜드와 제품명만큼 중요해지고 있다. ◇ 단백질 ‘더하기 경쟁’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GS25에서 판매하는 단백질 음료는 2020년 3종에서 지난달 기준 50종으로 6년 만에 약 17배 늘었다. 단백질 빵도 같은기간 3종에서 20종으로 증가했다.

‘몇 g이 들었느냐’를 앞세운 함량 경쟁도 치열하다. 매일유업은 올해 단백질 45g을 넣은 ‘셀렉스 프로핏 스포츠’를 출시했고, 남양유업은 ‘테이크핏 몬스터’의 단백질 함량을 43g에서 47g으로 높였다. 단백질 47g은 닭가슴살 약 200g이나 달걀 7~8개에 해당하는 양이다. 20대 성인의 하루 권장량과 비교하면 남성(65g)의 69%, 여성(55g)의 82%에 달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국내 RTD(즉석음용) 단백질 음료 시장은 2020년 64억원에서 지난해 1245억원으로 약 19배 커졌다. 과거 운동 마니아 중심이던 단백질 섭취가 체중 관리와 식사 대용 등 일상적인 수요로 넓어진 결과다. 특히 별도의 조리 없이 마실 수 있는 제품은 편의성을 앞세워 단백질 식품 시장의 고함량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

제로 시장에서는 정반대의 경쟁이 벌어진다. 얼마나 더 넣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빼느냐’가 경쟁력이다. ‘빼기 경쟁’은 주류업계로도 번졌다. 하이트진로는 ‘진로’를 제로슈거 제품으로 판매하고, 롯데칠성음료는 제로슈거 소주 ‘새로’를 앞세우고 있다. 오비맥주는 지난해 알코올뿐 아니라 당과 칼로리, 글루텐까지 뺀 무알코올 음료 ‘카스 올제로’를 내놨다. ◇ 제로 시장선 ‘빼기 전쟁’식품업계에서는 이같은 현상의 원인을 소비자가 맛뿐 아니라 당류와 단백질, 열량 등 영양성분을 직접 비교하기 시작한 결과로 본다. 업체 입장에서도 ‘건강한 제품’이라는 추상적인 설명보다 ‘0g’과 ‘47g’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숫자가 제품 차별성을 전달하기 쉽다는 분석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들은 제품을 고를 때 맛이나 가격뿐 아니라 당류와 단백질 함량을 꼼꼼히 비교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건강하다는 식의 추상적인 표현보다 직관적인 숫자를 앞세워 제품을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로 제품의 중심축인 음료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국내 저당·제로 탄산음료 시장은 2020년 8830만달러에서 지난해 6억7180만달러로 5년 새 7배 넘게 성장했다. 유통 현장에도 관련 상품이 늘었다. GS25의 저당·제로슈거 상품은 2023년 113종에서 지난달 305종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제품군도 넓어지고 있다. GS25는 지난 4월 설탕 일부를 대체당으로 바꾼 ‘저당전주비빔 삼각김밥’을 내놨다. 올해 상품 매출 상위권에도 저당 라떼와 베이글, 아이스크림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