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 당첨자 가운데 계약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악성 미분양 아파트에 최근 텐트를 치고 입주를 기다리는 대기 행렬이 등장했다. 2년 가까이 990가구 전체가 비어 있던 대구 달서구 ‘상인푸르지오센터파크’에서 벌어진 일이다. 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CR리츠)가 단지를 통째로 매입해 전세로 저렴하게 공급하자 수요가 몰린 것이다. 리츠를 통한 임대 전환이 악성 미분양을 해소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 구축보다 싼 새 아파트 전세
8일 분양업계에 따르면 상인푸르지오센터파크는 이날 ‘임대차 계약 예약’을 위한 2차 신청을 받았다. 선착순 접수 현장에는 텐트와 캠핑용 의자를 동원한 긴 줄이 이어졌다. 맨 앞 대기자는 43시간을 기다렸고 현장에는 250여 명이 몰렸다. 지난 6월 1차 신청 때도 550가구가 조기 마감됐다.
대우건설은 대구 지역 미분양이 심해지자 후분양 방식으로 공사비 회수를 시도했다. 2024년 4월 준공 이후에도 시장 침체로 분양 시점을 잡지 못하다가 같은 해 11월 입주자 모집 공고를 냈지만, 발코니 확장 무상 제공 등의 조건에도 청약 성적은 부진했다. 특별공급 6가구, 1·2순위 52가구 등 신청은 총 58건에 그쳤고 계약은 한 건도 없었다.
결국 단지는 CR리츠에 통매각됐다. CR리츠는 투자자 자금을 모아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 임대로 운영한 뒤 시장 회복 시 매각하는 구조의 부동산 금융 상품이다. JB자산운용이 설립한 리츠가 지난해 6월 이 단지를 인수했다.
전세 수요가 몰린 배경은 가격과 안전성이다. 전용면적 84㎡ 전세 보증금은 2억2200만~2억3850만원, 전용 113㎡와 117㎡는 각각 3억1700만~3억2700만원 수준이다. 인근 시세 대비 최대 1억원가량 낮다. 2004년 입주한 ‘대구상인푸르지오’ 전용 84㎡ 전세가 4월 2억2000만원에 거래된 점을 감안하면 준공한 지 2년 된 신축이 구축과 비슷하거나 더 낮은 가격에 나온 셈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임차인에게는 분양 전환 기회도 주어진다. 집값 하락 위험은 리츠가 부담하고 임차인은 신축 주거와 보증금 안전을 확보하는 구조다. ◇ 미분양 단지 매입 늘 듯대구에서는 CR리츠를 통해 준공 후 미분양을 해소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에 등록 및 신청을 마친 CR리츠 네 곳이 대구에서 매입한 준공 후 미분양 물량만 2200여 가구에 달한다.
전국 1호 사례로 꼽히는 수성구 파동 ‘수성레이크우방아이유쉘’이 대표적이다. 시공사 우방이 모집 자금 467억원 전액을 출자해 자사 미분양을 되사는 구조다. 리츠는 전체 394가구 중 288가구를 감정평가액의 83% 수준인 1255억원에 매입했다. 이 단지 전용 84㎡ 전세는 4월 2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같은 지역 ‘수성해모로하이엔’(2억5000만원), ‘수성못코오롱하늘채’(2억5000만원)보다 약 2000만원 낮은 수준이다.
달서구 본동 ‘빌리브라디체’(신세계건설 시공)도 CR리츠를 통해 미분양을 해소했다. 신세계프라퍼티투자운용이 설립한 에스밸류CR리츠가 222가구를 1225억원에 매입했다. 이 단지는 아파트 520가구와 오피스텔 86실로 구성된 지상 49층 규모 주상복합이다.
다만 매각가를 둘러싼 이견이 변수로 꼽힌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분양가 대비 약 30% 할인한 수준의 매각 가격을 두고 이해관계자 간 입장 차가 커 실제 거래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방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해 CR리츠가 취득한 비수도권 준공 후 미분양에 대해 법인세 추가 과세를 배제하고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를 적용하는 기한을 내년 말까지 1년 연장하기로 했다.
박종필/유오상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