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로이드 투약·중단 반복하다 간 장애…의료과실 아닌 이유

입력 2026-09-08 12:00
수정 2026-09-08 12:34


의사의 치료가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환자의 결과만을 놓고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업무상과실치사로 기소된 두 의사 A, B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피부과 전문의 A씨는 2013년 7월 피해자(12세)의 피부발진 치료를 위해 독성간염 등 부작용 우려가 있는 '답손'을 처방했다. 그러나 A씨는 피해자에게 사전 간 기능 검사를 시행하지 않았고 우려되는 부작용을 고지하지도 않았다.

피해자는 약물 과민 반응으로 그해 8월 같은 병원 응급실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B씨의 진료를 받았다. B씨는 '답손을 중단하고 필요에 따라 스테로이드를 투여해 볼 수 있다'는 협진 회신에도 답손만 중단한 채 스테로이드는 투여하지 않았다. B씨는 '전신 스테로이드 투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는 추가 협진 회신에 뒤늦게 스테로이드를 투여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중단했다. 이어 일주일 뒤 간 수치 악화로 다시 스테로이드를 투여했다.

스테로이드 투여와 중단을 반복한 끝에 피해자는 전격성 간부전으로 혼수상태에 이르러 간 이식을 받고 간 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A씨와 B씨는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에게 금고 8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사전에 부작용을 설명했다면 피해자가 즉시 내원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B씨에 대해서는 "'필요에 따라'라는 문구가 반드시 스테로이드를 투여하라는 것은 아니고 스테로이드 부작용의 가능성도 있었기에 형사적으로 제재할 과실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2심은 A씨에 대한 판단은 유지한 채 B씨에게 금고 8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스테로이드의 단기 투여와 중단을 반복한 것은 합리적 결정이라고 보기 어려워 업무상 과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의정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환자의 상황과 의사의 지식 경험 등에 따라 의사는 진료 방법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가진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닌 이상 진료 결과를 놓고 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실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해 "A씨가 사전에 간 기능 등 검사를 시행했더라도, 약물 과민 반응을 미리 알았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간 장애와 A씨가 행한 진료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B씨에 대해 "스테로이드를 조기에 투여했다면 피해자가 경증 상태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는 사후적 평가"라며 "오직 하나의 합리적 방법만이 존재했고 B는 그 방안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임민규 기자 jessim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