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에 립스틱을 바르는 격이었다. 35.56캐럿의 블루 다이아몬드가 경매에 등장하자 보석 업계는 경악과 우려에 휩싸였다. 수백 년 동안 유럽 왕실을 거쳐 바이에른 왕관을 장식했던 역사적인 보석, ‘비텔스바흐’였다. 논란은 새 주인이 이 보석을 다시 연마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모나리자에 립스틱을 바르면 과연 모나리자의 미소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역사적인 유물에 손대는 것은 보석의 영혼을 훼손하는 일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당시 비평가들은 “렘브란트의 그림 위에 덧칠하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나 새 소유주인 로렌스 그라프(Laurence Graff)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보석이 지닌 잠재력을 믿었다. 논란을 무릅쓰고 재연마로 일부분을 제거하고 컬러와 투명도를 끌어올렸다. 35.56캐럿의 ‘비텔스바흐’는 31.06캐럿의 팬시 딥 블루, 내부 무결점(Internally Flawless) 등급을 받은 ‘비텔스바흐-그라프(Wittelsbach-Graff)’로 다시 태어났다. 재연마에 대한 비판의 시선과 보석의 아름다움을 완성했다는 찬사는 지금도 공존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 사건이 다이아몬드의 본질을 꿰뚫는 그라프의 전문성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이다.
비스텔바흐-그라프, 딜레어 선라이즈, 레세디 라 로나 등 그의 손을 거친 전설적인 보석은 셀 수 없을 정도다. 2013년 로렌스 그라프는 영국 주얼리 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OBE(대영제국 4등 훈장 수훈자)를 받았다. 그는 보석을 보는 탁월한 안목으로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제국을 일궈냈다. 세상은 그를 ‘킹 오브 다이아몬드’라 부른다.
다이아몬드의 왕좌를 굳힌 역사적 명작 4선로렌스 그라프가 ‘킹 오브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이유는 그가 다룬 스톤의 목록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비텔스바흐-그라프’다. 2008년 그라프는 유럽 왕실의 역사를 간직한 비텔스바흐를 다이아몬드 경매 최고가인 1640만 파운드(당시 약 300억 원)에 사들였다. 그라프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난 블루 다이아몬드는 2010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호프 다이아몬드와 나란히 전시됐다. 이듬해 한 중동 국가의 왕실에 약 8000만 달러(약 850억 원)에 비공개 매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남아프리카에서는 221.81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 원석이 발견됐다. 이를 사들여 약 1년에 걸친 커팅과 연마 끝에 118.08캐럿의 팬시 비비드 옐로 다이아몬드를 완성했다. 그라프는 2010년 ‘딜레어 선라이즈(The Delaire Sunrise)’라는 이름으로 공개했다. 컬러 다이아몬드를 향한 그의 미학이 ‘딜레어 선라이즈’에서 절정에 달했다. 아프리카의 일출을 닮은 황금빛과 대담한 형태가 조화를 이룬 이 보석은 세계 최대의 팬시 비비드 옐로 스퀘어 에메랄드 컷 다이아몬드로 기록됐다.
201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 24.78캐럿의 핑크 다이아몬드가 등장했다. 그라프는 당시 보석 경매 사상 최고가인 약 4600만 달러(약 520억 원)에 이를 매입한 뒤 재연마했다. 중량은 23.88캐럿으로 줄었지만, 컬러는 팬시 인텐스 핑크에서 팬시 비비드 핑크로, 클래리티는 내부 무결점으로 향상됐다. 캐럿 일부(-0.90캐럿)를 포기하고 최고의 색과 투명도를 선택한 ‘그라프 핑크(The Graff Pink)’ 또한 그의 실력을 증명했다.
2017년에는 1109캐럿의 거대한 원석 ‘레세디 라 로나’를 5300만 달러(약 600억 원)에 사들였다. 18개월이 넘는 분석과 연마 끝에 2019년 302.37캐럿의 ‘그라프 레세디 라 로나(Graff Lesedi La Rona)’를 공개했다. 이로써 최고 컬러인 D등급과 최상의 투명도(Flawless)를 지닌 세계 최대의 스퀘어 에메랄드 컷 다이아몬드가 탄생했다. 그와 함께 66개의 주변 다이아몬드가 다듬어져 선보였다. 하나의 원석에서 총 67개의 다이아몬드를 완성한 이 프로젝트는 그라프가 구축한 기술과 노하우의 집약체였다.
15세 소년 견습공, 다이아몬드 제왕을 꿈꾸다그런 그의 성장기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1938년 런던 이스트엔드의 넉넉하지 않은 유대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로렌스 그라프는 15세에 학교를 떠나 주얼리 거리 해튼 가든의 쉰들러 공방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닥을 닦고 심부름을 하는 허드렛일부터 맡았지만, 세공대 앞에서 마주한 다이아몬드는 소년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곳에서 기술을 익히고 틈이 날 때마다 다이아몬드의 투명도와 커팅, 빛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보석을 보는 눈을 키웠다.
1960년, 스물두 살에 그는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다이아몬드 전문 도매기업을 설립했다.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해 30대였던 1970년대 초 런던의 부유층 거주지인 나이츠브리지에 첫 매장을 열었다. 매장은 대박이었다. 전 세계 보석 컬렉터들과 왕족, 그리고 저명인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거듭났다. 15세 견습공이 작은 공방에서 품은 강렬한 열정은 훗날 그를 ‘다이아몬드의 왕’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됐다.
원석에서 완성된 주얼리까지, 그라프의 수직계열화그라프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은 다이아몬드가 원석에서 완성된 주얼리로 탄생하는 전 과정을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관리한다는 데 있다. 세계 주요 광산과 생산업체, 경매를 통해 희귀한 원석을 확보하고, 로렌스 그라프가 지배 지분을 보유한 남아프리카 다이아몬드 코퍼레이션(SAFDICO)을 통해 원석의 분석과 커팅·연마를 진행한다. 이렇게 완성된 스톤은 런던 아틀리에에서 디자인과 세공을 거쳐 세계 각국의 그라프 부티크에서 고객을 만난다.
많은 주얼리 브랜드가 디자인을 구상한 뒤 그에 맞는 보석을 선택한다면, 그라프의 디자인은 보석 자체에서 시작된다. 원석의 형태와 색, 내포물의 위치를 면밀히 분석해 아름다움과 가치를 최대한 살릴 커팅 방식을 결정하고, 연마된 스톤의 개성이 극대화되도록 주얼리를 설계한다. 원석 확보부터 커팅과 연마, 디자인, 제작, 판매까지 직접 관여하는 수직계열화는 품질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동시에 희귀한 보석을 선점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하이 주얼리 제국을 지키는 가족 경영유서 깊은 주얼리 메종들이 거대 명품 그룹에 편입된 것과 달리, 그라프는 창립 이후 줄곧 가족 소유의 독립 경영을 이어왔다. 현재는 창업자 로렌스 그라프의 아들 프랑수아 그라프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가족 경영의 강점은 신속하고 일관된 의사결정에 있다.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희귀 원석이 시장에 등장하면 짧은 시간 안에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외부 주주의 단기적인 수익이나 대기업의 복잡한 승인 절차에 얽매이지 않는 구조는 그라프가 역사적인 다이아몬드를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가족 경영은 창업자의 안목과 기준을 다음 세대로 계승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로렌스 그라프는 오랫동안 쌓아온 고객과의 관계를 아들 프랑수아에게 물려주는 한편, 희귀한 보석을 알아보는 감각과 품질에 대한 집념을 공유해왔다. 가문의 집념은 다이아몬드뿐만 아니라 탁월한 유색 보석 주얼리를 선보이는 주얼리 하우스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라프에게 가족 경영은 거대 자본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하이 주얼리 제국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강력한 기반이다.
그라프에게 다이아몬드는 크기와 가격으로만 평가되는 상품이 아니다. 각각의 원석이 지닌 형태와 컬러, 빛의 결을 읽고, 그 안에 감춰진 아름다움을 최대한 끌어내야 하는 예술의 대상이다. 희귀한 원석을 알아보는 안목, 위험을 감수하는 결단력,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장인정신이 오늘의 그라프를 만들었다. 열다섯 살의 견습공은 누구보다 다이아몬드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그가 ‘킹 오브 다이아몬드(King of Diamonds)’라 불리는 진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