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소리는 커졌는데, 임원은 답하지 않는다." 올 하반기 임원 채용 시장은 이 같이 요약된다. 기업이 임원급 인재에게 보내는 스카웃 제안은 1년 새 두 배 넘게 늘었지만 정작 이를 받아들이는 비율은 조사 이래 가장 낮았다. 채용 시장이 뜨거워질수록 러브콜을 받은 임원은 오히려 더 조용해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7일 비즈니스 네트워크 서비스 리멤버에 따르면 현직 임원 25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이 같은 흐름이 포착됐다. 조사는 임원급 78만8000명의 애플리케이션(앱) 행동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를 담고 있다. 지난 6월 한 달간 임원급에게 전달된 스카웃 제안은 2만7390건. 지난해 같은 달(1만2740건)보다 115% 증가했다. 지난 7월에도 하루 평균 제안이 1년 전과 비교해 87% 늘었다.
임원급 채용 수요는 산업 전반에 걸쳐 증가했다. 지난해와 올해 월평균 제안 건수를 비교하면 바이오·제약·헬스케어는 550건에서 1200건으로 118% 늘었다. 유통·물류·운송은 400건에서 800건으로 100%, 금융·보험은 900건에서 1700건으로 89% 뛰었다. IT·통신은 50% 증가한 3000건을 기록했다. 기업 인재검색에 노출된 전체 프로필도 172만8000명으로 1년 새 15.4% 증가했다. 이 가운데 임원급은 78만8000명에 달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임원급 인재 공급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리멤버는 프로필 공개를 이직 의사로 해석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 비임원 직장인의 공고 지원자는 1년 새 48% 늘었지만 임원급 지원자는 3606명에서 3665명으로 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제안은 폭증했지만 임원이 스스로 움직이는 규모는 사실상 제자리였다는 얘기다.
임원급의 스카웃 제안 수락률은 지난해 6월 38%에서 올해 6월 29.8%로 8.2%포인트 떨어졌다. 지난 7월엔 28.2%를 기록해 리멤버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무응답 지수는 올해 2월 72.7에서 7월 91.5로 높아졌다. 이는 제안 100건당 '무응답' 건수를 나타낸 것이다. 대표·사장급은 7월 제안 1건당 무응답 응대가 1.12건으로 받은 제안보다 무응답이 많은 유일한 직급이었다.
하지만 임원급의 침묵은 단순한 '무관심'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리멤버 설문조사를 보면 임원급 중 64.3%는 '조직을 떠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적극적으로 이직을 알아보는 비율은 25.9%로 나타났다. 이들 간 격차인 38.4%포인트는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침묵 구간'으로 분류된다. 실제로 이에 해당하는 임원급 중 59.6%는 최근 3개월 이내 영입 제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이직을 단숨에 결정하지 않았다. 임원급 가운데 39.7%는 현 회사를 떠날지 여부를 6개월 이상 고민했다. 고민 중인 임원만 놓고 보면 34.8%가 1년 넘게 고민한 장기 고민층으로 나타났다. 리멤버는 "임원의 이탈 검토는 충동이 아니라 숙성"이라며 겉으로 드러난 시점엔 이미 마음이 정리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임원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본인 자리가 갖는 특성도 작용했다. 프로필을 비공개로 돌리거나 특정 회사에 숨긴 경험이 있는 임원 59명에게 이유를 묻자 50.8%(복수응답)가 '지금 회사·경영진에게 이직을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피하려고'라고 답했다. '경쟁사·거래처·이사회 연결 회사에 노출될 것 같아서'란 답은 42.4%를 차지했다. 리멤버는 "임원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노출을 피하려는 위험 관리"라고 풀이했다.
대표급은 회사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최고경영자(CEO) 53명에게 현 조직을 떠날 경우 다음 행보를 묻자 41.5%는 다른 회사가 아닌 '고용시장 밖'을 선택했다. 세부적으로는 창업 13.2%, 자문 9.4%, 투자 1.9%, 은퇴·세컨드 라이프 17%로 나타났다. 고용된 임원직으로 이동하겠다는 응답은 39.6%였다. 대표급 영입 과정에서 연봉이나 직함보다 지분·재량권·임기 이후 설계가 주요 요인으로 꼽히는 이유다.
리멤버는 "가장 위험한 임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임원"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임원'을 포착해 붙잡아두려면 △최근 6개월간 스카웃 이야기를 나눈 적 있는지 △사내 프로필·조직도·인수인계 문서 등 정보 갱신이 이어지는지 △거취 관련 화제를 피하는지 △회의에서 마지막으로 신규 안건을 제안한 것이 언제인지 등을 살펴야 한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임원급을 영입해야 할 경우 '무응답'을 거절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리멤버는 "한 번의 접촉으로 (채용문을) 닫지 말고 6개월 이상 시점을 기다리는 파이프라인을 운영해야 하고 제안이 몰리는 격전지(바이오·유통·금융)는 조건 나열형 메시지가 묻힐 수 있는 만큼 후보의 사업 맥락을 아는 짧고 구체적인 제안이 신뢰를 준다"고 설명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