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정부의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부동산 시장이 다시 출렁이고 있습니다.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과 초고가 주택 과세 표준 강화 등으로 보유세 부담이 가중되면서, 고가 주택 한 채를 보유한 채 정기적인 소득이 부족한 은퇴자들의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세금 납부를 위해 실거주 주택을 처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시장 전반에 감돌고 있습니다.
이번 개편안에서 특히 논란이 된 대목은 만 65세 이상 고령층이 수도권 주택을 매각하고 비수도권으로 이주할 경우 혜택을 주는 양도소득세 감면 조항입니다. 절세를 고리로 은퇴자들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는 이 특례 제도를 두고 일각에서는 “평생 일궈온 터전에서 밀려나라는 것이냐”며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비판 섞인 반발까지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책적 유인책만으로 사람의 거주지를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주거도시학 및 인구학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은퇴자는 나이가 들수록 원래 살던 곳에서 그대로 늙어가기를 희망하는 ‘Aging in Place(현지 노후 거주)’ 경향이 압도적으로 강합니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인간의 주거 본능입니다.
해외에서는 은퇴 후 미국 플로리다나 스페인 코스타 델 솔 같은 온난한 휴양지로 이주하는 사례가 활발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실정은 매우 다릅니다. 국토가 협소하고 수도권 집중도가 극심한 국내 구조상, 지방의 휴양지는 문화·생활 인프라 측면에서 수도권 핵심지의 대체재가 되기 어렵습니다. 단순한 자연환경보다는 도시적 삶의 편의성이 은퇴 후 삶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은퇴자가 현재의 거주지를 고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 및 생활 인프라’입니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대형 종합병원 접근성은 생존과 직결된 핵심 요소가 됩니다. 여기에 이미 수십 년간 쌓아온 사회적 관계망, 자녀 및 손자녀와의 거리, 익숙한 상업·문화시설 등 경제·생활 활동 영역이 현재 거주지에 묶여 있어 지방 이주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부동산 자산 가치는 높지만 정기적인 현금 흐름이 부족한 은퇴자들은 지방으로 쫓겨나듯 내려가는 대신 다른 대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일한 생활권 내에서 평수를 줄여 이동하는 ‘다운사이징’이나, 주택연금 활용, 혹은 서울 내 외곽지역으로의 미세 이동을 택할지언정, 수도권 핵심 인프라망을 완전히 벗어나는 선택을 할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주거 수요의 결합이 일어납니다. 보유세 부담을 무릅쓰고라도 인프라가 갖춰진 서울 핵심지에 머물려는 은퇴층과, 고소득을 바탕으로 뛰어난 입지와 미래 가치를 추구하는 ‘젊은 자산가(영리치)’가 바라보는 선호 지역이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두 계층 모두 뛰어난 교통, 상권, 의료, 쾌적한 주거 환경을 갖춘 입지를 강력히 원하고 있습니다.
서울 핵심지에서도 보유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저평가된 지역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지역들은 가장 큰 인구집단인 베이비부머와 MZ세대의 선택을 동시에 받으면서 경쟁하는 양상이 전개될 겁니다. 소득과 자산이 양극화되면서 고소득과 고자산가들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반면,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의 고가 아파트들은 정부의 규제로 더 이상 지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의 수급 상황을 정상적으로 되돌리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산을 유지하고 방어하려는 고자산 은퇴층의 ‘마지막 보루’와, 소득을 바탕으로 자산을 축적해 나가는 영리치들의 ‘새로운 진입’이 같은 지역으로 쏠린다면 그곳의 가치는 더욱 공고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의 유입과 견고한 실거주 수요가 동시에 받쳐주는 지역은 시장 침체기에도 하방 압력을 견뎌내며, 반등기에는 가장 먼저 상승 동력을 얻게 됩니다.
정부는 지방 이주 세제 혜택을 통해 수도권 인구 분산과 지방 균형 발전을 도모하려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장의 생리는 정책의 의도대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실거주 기반의 Aging in Place 욕구와 상급지 쏠림 현상이 결합하면서, 오히려 서울 핵심 입지와 비선호 지역 간의 주거 양극화 및 자산 격차는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세금 폭탄과 정책적 압박 속에서도 사람들의 발걸음은 결국 삶의 질과 인프라가 확보된 곳으로 향하게 마련입니다. 은퇴자의 고집스러운 거주 욕구와 영리치의 과감한 자본 투자가 만나는 핵심지 부동산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세대를 관통하는 자산의 안식처로 더욱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 될 것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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