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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에 대한 부정적인 논의가 많았던 과거와 달리 현재 가상자산 시장은 제도권으로 편입돼 가면서, 이제는 한국 사회 내에서 떳떳하게 이름을 알리고 있다. 나아가 가상자산 2차 입법이 연내 또는 내년에 이뤄지면, 가상자산 시장은 제도권으로의 도약이 완성된다. 그러나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이라는 2차 입법의 목적과는 조금은 궤를 달리하며 최근 논의가 불거진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제한 논의'가 2차 입법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열쇠가 돼 가고 있다.
가상자산 사업에 대한 새로운 제도 설계라는 틀에서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제한 규제가 하나의 테마가 될 수 있다는 점에 필자도 동의한다. 이용자 보호, 시장 건전성 확보라는 규제 목적을 위해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지분 제한이 2차 입법 과정에서 논의될 수 있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제한 논의는 산업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제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실태조사와 이해관계자 논의, 해외 사례 비교 연구, 규제영향분석 등 기본적인 정책 수립 절차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필자뿐만이 아닌 듯하다.여전히 모호한 규제 근거·목적
지분 제한 규제는 그 성격상 재산권과 영업의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비교적 강도 높은 규제에 해당한다. 특정 개인이나 법인이 사업체의 지분을 일정 비율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은 곧 경영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제약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헌법상 기본권 제한은 과잉금지 원칙에 따라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라는 네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이론적 원칙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와 법원에서 적극적으로 인정해온 원칙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개된 규제 방향을 보면, '왜 하필 지분 제한인지', '어느 수준의 제한이 적정한지', '다른 규제 수단으로는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지'에 대한 실증적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존 규제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무엇인지, 즉 기존 규제 체계와 별도로 지분 제한까지 도입해야 할 구체적인 필요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지분 제한의 필요성이나 제한 수준에 대한 설명 없이는 규제의 목적 자체가 모호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예컨대, 이해충돌 방지가 목적이라면 내부통제 강화나 공시 의무 확대 등 덜 제약적인 수단을 먼저 검토할 수 있다. 지분 제한이라는 강력한 수단을 선택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설득력 있는 근거가 뒷받침돼야 한다.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지분 제한의 경우, 구체적으로 발생한 시장 실패 상황이나 지분 집중이 이용자 피해와 어떤 인과관계를 지니는지에 대한 분석이 아직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 규제 방향 자체가 모호하게 제시된 것도 그 근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공식 검증·의견 논의는 어디에?
가상자산사업과 같이 자생적으로 출발해 어느 정도 시장 질서 내에 편입된 시장에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검토가 필요하다. 최소한 가상자산 사업자별 실태 파악, 해외 주요국의 규제 현황 비교, 규제 도입 시 예상되는 경제적 영향 분석, 그리고 산업계·학계·법조계를 아우르는 공론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를 종합하면, 이런 절차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채 규제안 마련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나 학계를 대상으로 한 공식적인 의견 수렴이나 공청회가 개최됐다는 소식을 찾기 어렵고, 독립적인 연구용역이나 규제영향분석 결과가 공개됐다는 정보도 확인되지 않는다.
미국은 가상자산 관련 규제를 논의할 때 SEC와 CFTC 등 복수의 규제기관이 공개 의견 수렴(public comment) 절차를 거치고 의회 차원에서도 여러 차례의 청문회를 개최한다. 유럽연합(EU)의 MiCA도 수년간의 논의 속에서 논의되고 합의한 결과물이다.
좋은 규제는 충분한 논의와 공감에서 시작
규제의 실효성은 그 내용 못지않게 과정에서 비롯된다. 이해관계자들이 규제의 필요성과 합리성에 공감할 때 자발적 준수가 이뤄지고, 그래야 규제 집행 비용도 줄어든다. 반대로 충분한 연구와 논의를 거치지 않은 규제는 현장의 수용성이 낮아질 수 있고, 법적 분쟁의 여지가 생기며, 의도치 않은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이용자를 보호하고 건전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자 한다면, 규제의 속도보다 규제의 품질 및 완성도에 집중해야 한다. 규제를 도입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가상자산 시장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규제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제한과 관련해 정부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최소한 검토하거나 거쳐야 한다.
첫째, 가상자산 사업자의 지분 구조 현황과 그에 따른 리스크에 대한 독립적인 실태조사와 연구용역을 시행해야 한다. 둘째, 산업계와 학계, 법조계,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공개 토론회나 공청회를 열어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셋째, 규제영향분석을 충실히 수행해 지분 제한이 산업 경쟁력, 투자 환경, 이용자 보호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넷째, 해외 주요국의 규제 사례를 체계적으로 비교·분석해 한국의 시장 상황에 맞는 규제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가상자산 사업자 지분 제한은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정책 결정이다. 그만큼 속도보다는 과정의 충실함을 우선시해야 한다. 2차 입법의 틀에서 이를 포함하지 못하더라도 정부가 열린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좋은 규제는 시장에 대한 이해와 시장 참여자의 신뢰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