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자 들어간 주식은 사지 마라"…같은 회사를 두 번 파는 나라 [현민석의 페어플레이]

입력 2026-09-07 07:50
수정 2026-09-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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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식 커뮤니티에는 이런 말이 돈다. "L자 들어간 주식은 쳐다보지도 마라." 회사를 쪼개 상장하고 그 자회사를 또 상장하는 이른바 중복상장으로 손실을 본 개미투자자들의 자조 섞인 한탄이다. 이 말은 대통령의 입에까지 올랐다. 지난 1월 대통령은 중복상장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적하며 한마디를 보탰다. "미국에서 이런 상장이 허용되겠느냐." 그 직후 LS그룹은 모회사 주주 특별 배정까지 내걸며 추진하던 증손회사 에식스솔루션즈의 상장을 전격 철회했고, 다른 그룹들도 상장 계획 재검토에 들어갔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런 방식의 상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상장사가 보유한 다른 상장사 지분가치가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중복상장 비율)은 미국이 0.05%, 일본이 4%다(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 지난해 10월 기준). 그런데 한국은 18%다. 이 차이를 만든 것은 기업 문화가 아니라 제도다. 왜 쪼개서 또 상장하는가 ? 지배력을 지키는 물적분할회사를 쪼개 다시 상장하는 데에는 기업 나름의 이유가 있다. 조 단위 투자가 필요한 신사업을 별도 회사로 떼어 상장하면, 그 사업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하려는 자본을 이자 부담 없이 유치할 수 있고 본업과의 위험도 분리할 수 있다. 실제로 다른 나라 기업들도 같은 이유로 회사를 분할한다.

그런데 한국만의 사정은 분할의 방식에 있다. 한국 기업이 택하는 물적분할은 떼어 낸 회사의 주식을 모회사가 전부 갖는 방식이다. 그 일부를 상장으로 팔면 남의 돈이 들어오고, 나머지 주식만 쥐고 있어도 지배력은 유지된다.

이와 달리 미국에서는 떼어 낸 회사의 주식을 모회사가 아니라 모회사 '주주들'에게 직접 나눠주는 인적분할, 이른바 스핀오프(spin-off)가 표준이다. 인적분할을 하면 신설회사 지분이 주주들에게 흩어져 지배주주의 지배력도 줄어든다.

물적분할 후 상장은 지배력을 지키면서 남의 돈을 끌어오는 방법이고, 한국에서 유독 이 방식이 많이 쓰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방식의 상장을 규율하는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시대상기업집단 92개 중 45개가 지주회사 체제이고, 지주회사 체제에서 쪼갠 회사를 어디까지 팔 수 있는지는 공정거래법 제18조가 정한다. 지주회사는 상장 자회사의 지분을, 자회사는 상장 손자회사의 지분을 각각 30%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1999년 지주회사를 허용하면서 둔 최소 요건인데, 뒤집어 읽으면 30%만 남기고 70%는 팔아도 된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 구조는 두 가지 문제를 낳는다. 하나는 총수의 소유와 지배가 어긋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주가 손해를 보는 것이다. 첫 번째 문제 ? 소유는 9%, 이익은 100%
먼저 소유와 지배의 문제다. 총수가 지분 100%인 회사를 쪼개 상장하며 30%를 남기고, 그 자회사가 다시 쪼개 상장하며 30%를 남긴다고 하자. 맨 아래 회사에 대한 총수의 경제적 몫은 30%의 30%, 곧 9%로 줄어든다.

그러나 지배력은 자회사에서도 손자회사에서도 100% 그대로다. 30%를 쥔 회사가 아래 회사의 이사회를 구성하고 그 회사는 다시 위 회사가 지배하므로 총수의 뜻이 끝까지 관철되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이달 공개한 주식소유현황에서도 총수일가의 직접 지분은 평균 3.5%에 불과한데 비해 계열사를 통한 내부지분율은 61.4%에 이른다. 자기 돈 3.5%로 61.4%의 의결권을 움직이는 것이다.

여기서 반문이 나올 법하다. 경제적 이익의 9%만 가져간다면 총수에게도 손해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배당만 놓고 보면 그렇다. 그러나 지배력이 있으면 배당을 거치지 않고도 다른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 가령 손자회사가 총수 개인 지분 100%인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면 그 이익은 9%로 희석되지 않고 100% 총수의 것이 된다.

재무학은 이를 '지배권의 사적 이익'이라 부른다. 결국 총수는 지분은 9%로 줄이면서도 이익은 100%에 가깝게 거둔다. 총수 입장에서 소수 지분만 남기는 상장이 남는 장사인 이유다. 그 이익은 결국 나머지 91% 주주의 몫에서 나온 것이다. 두 번째 문제 ? 두 번 파는 회사, 두 겹의 피해자한편 주주 쪽에서는 두 부류의 주주가 피해를 본다. 2022년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이 전형적인 예이다. LG화학 주주들은 배터리 사업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했지만, 그 사업이 물적분할로 자회사가 되어 따로 상장되면서 그 회사 주식은 단 한 주도 배정받지 못했다. 배터리 회사 주식은 LG화학이라는 법인이 가졌는데, 시장은 자회사 주식을 직접 살 수 있게 되자 모회사 주식을 껍데기처럼 취급했고 LG화학의 주가는 급락했다.

공모주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돈은 냈지만 의결권이 수만 명에게 흩어져 있어 이사회는 모회사가 정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 이사회가 모회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거나 배당을 줄여도 공모주주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한쪽은 갖고 있던 것을 잃었고, 다른 쪽은 산 것을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다. 쪼개기 상장의 해법 ? 상장 금지가 아닌 물적분할 상장의 지분 요건정부는 지난 3월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7월 세부 기준을 확정했다. 물적분할한 자회사를 상장하려면 최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한 모회사 주주총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모회사 이사회에는 주주 보호 의무가, 거래소 심사에는 충실의무 이행 확인이 더해졌다.

방향은 옳다. 그러나 절차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주총회를 통과한 상장이라면 30%만 남기고 70%를 파는 구조가 그대로 허용되고, 지배력을 지키면서 남의 돈을 끌어오려는 유인도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정거래법이 보탤 수 있는 장치가 있다. 물적분할로 신설한 자회사를 상장할 때에는 모회사가 지분 50% 이상을 일정 기간 유지하도록 자회사 지분 요건을 상향하는 것이다. 매각할 수 있는 지분이 70%에서 50%로 줄면 남의 돈으로 지배력을 유지할 유인은 그만큼 약해지고, 소유와 지배의 괴리도 9%가 아니라 25% 수준으로 억제된다.

대기업집단의 절반이 지주회사 체제인 만큼 이 요건 하나로도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고, 기존 지주회사에 대해서는 경과규정을 두어 일정 기간 적용을 유예하고 신규 상장부터 적용하면 시장의 충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상장 하나가 멈췄다. 그러나 말은 제도가 아니다. 물적분할 후 상장이라는 방식을 그대로 두는 한, 같은 논란은 다른 그룹에서도 되풀이될 것이다. 회사를 두 번 팔면서 주주를 두 번 울리는 상장이 멈출 때, 이니셜을 가려 가며 주식을 고르는 시대도 끝이 날 것이다. 그것이 페어플레이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