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바흐도, 카사트도 매료된 '커피 한 잔'

입력 2026-09-04 17:43
수정 2026-09-05 00:08
커피는 꼭 뜨거운 것을 마신다. 차분히 앉아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면서 또는 편안한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홀짝홀짝 마시는 음료, 그것이 커피다. 얼음과 섞어 꿀꺽꿀꺽 마시는 음료는 적어도 내겐 커피가 아니다.

이 취향은 어쩌면 ‘집순이’라는 성향과도 맞닿아 있다.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대개 바쁘거나 활동적인 이들, 회사로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 집보다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생각은 유럽에 커피가 퍼진 내막과도 맞닿아 있다. 커피를 통해 사람들은 사교와 정보를 나누고 더 활발히 움직이게 됐으니 말이다.

커피는 17세기 중엽 오스만튀르크에서 오스트리아를 거쳐 유럽에 들어왔다. 술을 마시지 않던 오스만튀르크의 전사들은 대신 이 까만 음료를 마시며 정신이 번쩍 드는 경험을 했고, 그 소식은 유럽에도 전해졌다. 다만 맛이 너무 쓴 것이 문제였다.

1683년, 오스만튀르크 군대의 전리품에서 얻은 커피콩으로 빈에 커피하우스 ‘블루 보틀’을 연 게오르크 콜시츠키는 까만 음료에 우유와 꿀을 섞었다. ‘카페라테’의 탄생이었다. 이후 런던, 빈, 라이프치히, 파리, 로마 등에 커피하우스가 앞다퉈 등장해 토론과 사교, 일의 공간이 됐다. 영국 런던의 커피하우스에서는 보험회사와 신문이 탄생했고, 프랑스 파리의 극장 옆 카페 ‘프로코프’는 연극이 끝난 후 배우와 관객이 몰려드는 아지트가 됐다. 지금도 빈의 ‘첸트랄’처럼 오래된 커피하우스들은 입구에 여러 종의 신문을 배치해두는데, 인쇄물을 구하기 어렵던 시절 신사들이 신문을 보러 오던 흔적이다.

여성들도 커피를 즐겼지만 ‘양갓집 규수’는 19세기 후반까지도 거리의 커피하우스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었다. 거리를 걷는 여성은 노동자 계층뿐이었고, 좋은 집안일수록 자유가 더 제한돼 커피 한 잔 마시러 나가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양갓집 규수 출신인 인상파 화가 베르트 모리조(1841~1895)와 메리 카사트(1844~1926)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상파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햇빛과 대기를 화폭에 담는 것을 강령으로 삼았지만,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동료 화가들처럼 야외에 이젤을 세울 수 없었다. 대신 이들은 거실에 머무는 가족, 특히 커피나 차를 마시는 여성들을 그렸다.

카사트의 ‘티타임’은 거실에서 차를 마시는 두 여성을 담은 그림이다. 상념에 잠긴 화가의 언니 리디아와 손님 사이의 서먹한 공기를 은빛 티포트와 따뜻한 차 한 잔이 누그러뜨린다.

카사트, 모리조와 달리 라이프치히의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일찌감치 커피를 마시러 거리로 나갔다. 그는 세속 칸타타 ‘조용히, 잡담은 그만’, 일명 ‘커피 칸타타’를 작곡했다. 매일 세 잔의 커피를 마셔야 하는 딸과 이를 막는 아버지의 실랑이는 결국 딸의 결혼으로 해피엔딩을 맞는다. 딸이 부르는 ‘아, 커피는 얼마나 달콤한가!’는 밝은 플루트 선율로 지금도 사랑받는 아리아다.

커피는 대화의 윤활유가 되기도 하고, 하루를 여는 작은 에너지원이 되기도 한다.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많은 이에게 커피 한 잔은 일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나에게 커피는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에 가깝다. 오늘도 수고했다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손길 같은 것. 제약 속에서 화가의 길을 걸은 카사트에게도, 37년간 박봉과 격무를 견딘 바흐에게도 한 잔의 커피가 그런 위안이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