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룰을 만드는 워싱턴 로비스트

입력 2026-09-04 17:55
수정 2026-09-05 00:41
미국에서 기업은 시장에서만 경쟁하지 않는다. 제품과 가격, 기술력을 놓고 벌이는 경쟁 뒤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기 위한 또 하나의 전장이 있다. 워싱턴이다. 지난 미국의 연방 로비 지출은 50억달러를 넘어섰다. 빅테크부터 제약·방산·금융·반도체 기업,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대학, 심지어 외국 정부까지 의회와 행정부를 상대로 각자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움직인다.

우정엽 미국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신간 <액세스>는 세계 최대 로비 시장인 워싱턴 K스트리트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외교부 외교전략기획관과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 소장을 거쳐 현대자동차그룹에서 대미 정책 전략을 총괄했다. 연구자와 외교관, 기업인의 자리에서 직접 경험한 워싱턴 정치의 작동 원리를 책에 담았다.

책이 주목하는 것은 제목 그대로 ‘접근권(access)’이다. 막대한 돈을 쓴다고 반드시 원하는 정책을 얻는 것은 아니다. 누가 정책을 결정하는지, 언제 개입해야 하는지, 자신의 요구를 어떤 논리와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쿠팡은 어떻게 미국 의회를 움직였는지, 틱톡은 최정예 로비팀을 꾸리고도 왜 강제 매각 위기를 막지 못했는지, 엔비디아는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를 둘러싸고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추적한다.

책은 선거 이후의 미국 정치를 보여준다. 선거가 ‘누가 권력을 가질 것인가’를 결정한다면, 로비는 그 권력이 ‘어떤 규칙을 만들 것인가’를 둘러싼 경쟁이다. 규제 하나가 기업의 매출과 한 나라의 산업 전략까지 뒤흔드는 시대, 워싱턴을 이해하는 것은 규칙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이해하는 일이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