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자신의 철학대로 살지 못한 철학자들

입력 2026-09-04 18:01
수정 2026-09-05 00:37
1933년 파리 몽파르나스의 한 카페에서 세 젊은 철학자가 마주 앉았다. 베를린에서 돌아온 레몽 아롱은 친구 장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에게 자신이 마시던 살구 칵테일을 가리켰다. ‘철학은 추상적인 관념만 다루는 게 아니라 눈앞의 칵테일처럼 일상의 구체적인 경험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사르트르는 이 새로운 철학에 단숨에 매료됐다. 훗날 세계를 휩쓴 프랑스 실존주의가 움트는 순간이었다.

영국 작가 세라 베이크웰이 쓴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은 이 한 잔의 칵테일에서 출발해 20세기 실존주의의 계보를 좇는다. 에드문트 후설과 마르틴 하이데거에서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알베르 카뮈, 모리스 메를로퐁티로 이어지는 사상의 흐름을 철학자들의 삶과 함께 펼쳐놓는다.

자유와 책임, 실존과 선택 등 개념은 난해한 이론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카페에서 밤새 토론하고 사랑하고 싸우고 절교하며, 나치의 등장과 전쟁, 파리 점령과 해방, 냉전을 통과한 이들의 선택 속에서 철학이 어떻게 태어나고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철학자라고 해서 자신의 철학대로 살았던 것도 아니다. 자유를 역설한 사르트르는 정치적 오판을 거듭했고, ‘존재’를 파고든 하이데거는 나치에 협력했다. 친구였던 사르트르와 카뮈, 메를로퐁티는 정치적 견해차로 멀어졌다. 반면 사르트르의 동반자로 가려졌던 보부아르와 그의 대표작 <제2의 성>의 사상적 가치는 새롭게 조명한다. 저자는 이를 실존주의가 낳은 가장 변혁적인 저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이 책은 철학 입문서이면서 거대한 집단 전기다. 철학자들의 결함과 모순까지 사상의 역사 안으로 끌어들인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