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기 신라 승려 혜초가 수마트라를 지나 인도로 향하던 뱃길은 오늘날 가장 붐비는 해상통로 믈라카 해협을 거쳤다. 400여 년 전 선비 조완벽도 무역선에 몸을 실어 베트남 땅을 세 차례 밟았다. 두 사람의 발자취를 잇듯 한국 조선업도 그 바닷길을 따라 아세안으로 향하고 있다. 조선업 키우는 印尼·베트남인도네시아는 1만7000여 개 섬으로 이뤄진 세계 최대 군도 국가이자 대표적인 조선 시장이다. 선박은 단순 운송수단을 넘어 어업·광업·관광·국방을 떠받치는 기간산업으로 선주사 1만2700여 개, 조선소 340여 곳과 수많은 부품 기업이 생태계를 구성한다. 등록 선박 척수는 세계 최다지만 대부분 소형선이어서 톤수 기준으로는 10위권 밖에 머문다. 조선소의 70% 이상도 중소형에 그친다.
선진국으로 가겠다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청사진인 ‘골든 인도네시아 2045’ 비전에서도 조선업은 핵심 축으로 꼽힌다. GDP 기여율이 1%대에 불과한 조선업을 10%까지 키우겠다는 목표다. 현지 조선소협회 관계자는 이를 위한 한국과의 공동 연구 과제로 탄소 배출을 줄인 ‘그린 조선소’ 건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또 다른 신흥시장은 남북으로 3200km 넘게 뻗은 해안선을 보유한 베트남이다. 압도적인 점유율의 한·중·일 3강에 이은 조선업 강국으로, 100곳 가까이 되는 대형 조선소와 수리·정비 공장들을 갖췄다. 그러나 중소형 선박 비중이 높아 수출 화물 운송은 여전히 외국 의존도가 크고 기자재의 상당 부분도 수입에 기대고 있다. 국영 조선사들이 구조조정을 겪는 사이 외국계 기업이 진출해 베트남 조선업의 체질을 바꾸고 있다. 중부에 자리한 H조선은 한국 조선업 해외 진출의 첫 성공 모델이자 동남아 굴지의 조선소로 자리매김했다. 노르웨이·네덜란드·호주 업체들도 해양플랜트 지원선, 알루미늄 특수선 등 고부가 선종의 생산기지로 베트남을 활용하며 기술 고도화와 선박 다변화를 이끌고 있다. 베트남 정부 역시 2030년까지 조선업 자립 체계를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친환경·고부가 전환이 여는 기회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 ‘넷제로’를 향해 2030년 20%, 2040년 70% 탄소배출 감축이라는 중간 목표를 내놨다. 탄소 배출 한도를 넘는 선박은 운항 제한이나 비용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인도네시아는 IMO 기준에 맞추기 위해 선박 평형수 처리와 황산화물 배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팜유 1위 생산국이라는 이점을 살려 바이오디젤 혼합유를 대다수 선박에서 사용한다.
우선 눈여겨볼 대목은 고부가가치 선박이다. 인도네시아는 대형·첨단 선박 건조 역량이 부족해 예인선·바지선 등 수준에 머물러 있다. 베트남 또한 중소형 벌크선과 일반 화물선 위주에서 LNG·전기·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특수선과 수리·개조 시장으로 축을 옮기고 있다. 기자재 수요도 눈에 띈다. 인도네시아는 엔진 부품 등 주요 기자재 국산화율이 낮고, 필터 교체 주기가 짧은 바이오디젤 특성상 유지관리 수요가 꾸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친환경 전환과 스마트 제조 흐름도 고무적이다. 여기에 호위함·잠수함 등 방산과 기술인력 양성 분야에서도 협력할 여지가 많다. KOTRA는 지난해 말 ‘한-베트남 오프쇼어 테크 커넥트’에 이어 올여름 인도네시아에서 ‘한-아세안 마리타임 위크’를 6회째 열며 진출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을 두 축으로 삼아, K조선이 아세안 바닷길을 열어갈 때다.
구본경 KOTRA 동남아대양주지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