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내려간다. 용량과 함께다.
라면과 빵, 참치캔 등 주요 가공식품 가격이 잇따라 오르며 장바구니 피로감이 커지자, 식품·외식업계가 제품 크기와 가격표를 함께 깎아내는 '다운사이징'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원가 압박 탓에 출고가를 무작정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용량과 구성을 덜어내 소비자가 당장 결제하는 절대 금액 문턱을 낮추는 전략이다.
식품 대기업들은 누적된 원부자재·물류비 부담을 이유로 가격을 줄줄이 올렸다. 동원F&B가 참치캔 가격을 9% 올렸고, 팔도는 용기면 12종 가격을 평균 5.5% 인상했다. 삼립은 빵 50여 종을 평균 9%대, 오뚜기는 컵라면 29종을 6.7%가량 올렸다. 잇단 가격 인상에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도 만만치 않은 분위기다.
이 같은 도미노 인상 속에서 소용량·저가 상품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CJ제일제당은 일반 용량(210g)의 절반 수준인 110g짜리 '햇반 부드러운 미니밥' 출시를 준비 중이다. 1회 결제 금액 자체를 낮추고 잔반 부담을 덜어내 1인 가구와 소식 수요를 공략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구체적인 판매 가격과 유통 채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현재 주요 편의점 기준 기존 210g 햇반 가격이 2400원 수준까지 오른 상황에서, 절대 결제액뿐 아니라 단위당 가격까지 함께 낮아질지는 미지수다.
커피 쪽에서는 용량과 단위당 단가를 동시에 낮춘 제품도 등장했다. 남양유업은 이달 초 기존 250㎖(1300원)이던 컵커피 '프렌치카페 악마의유혹'을 200㎖로 줄여 900원에 내놨다. 용량을 50㎖ 덜어내면서 가격을 400원 인하해 1㎖당 가격은 기존 5.2원에서 4.5원으로 13.5% 떨어졌다.
외식 프랜차이즈 시장에서는 메뉴 운영을 효율화해 가격을 깎아내는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 써브웨이는 올해 초 주문 선택지를 덜어내고 단가를 낮춘 4300원 단일 레시피 '피자썹'을 선보였다. 지난 5월 주요 샌드위치 메뉴 가격을 일제히 올리면서도 피자썹 가격은 유지해 저가 메뉴 라인업을 확보했다.
한식 뷔페 역시 메뉴 축소로 체질을 개선했다. 이랜드이츠 '자연별곡'은 취급 메뉴를 기존 100여 종에서 60여 종으로 압축했다. 대신 평일 가격을 점심·저녁 구분 없이 1만5900원(기존 저녁 2만5900원), 주말은 1만9900원(기존 2만7900원)으로 30~40%가량 낮췄다.
이러한 전략은 1~2인 가구 확대와 식단 관리 수요에 맞춘 것이라 하지만, 누적된 원가 압박 속에서 가격 저항선을 넘지 않으려는 고육책이기도 하다. 제품 가격을 일괄적으로 올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용량과 구성을 덜어내 구매 장벽을 낮추는 방식을 택한 셈이다.
체감 문턱을 낮춘 효과는 시장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다. 900원 컵커피는 출시 3주 만에 도매 주문량 12만 봉을 넘어섰고, 가격을 낮춘 한식 뷔페 매장은 방문객이 50%가량 늘었다.
다만 무조건적인 호응으로 보긴 어렵다. 온·오프라인에 단위가격 표시제가 안착하면서 당장의 결제액을 아끼는 편의와 100g·100㎖당 가성비를 동시에 비교하는 소비자의 계산기도 함께 정교해지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원가 부담 속에서 소비 심리까지 얼어붙어 무작정 가격을 올리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체감 가격 문턱을 낮추기 위한 식품·외식업계의 다운사이징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