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이고 뭐고 산에서 빨리 내려가자'…해외서도 터졌다 [K컬처인사이드]

입력 2026-09-05 12:29
수정 2026-09-05 13:45

나영석 PD가 이끄는 넷플릭스 예능 '대체 등산을 왜 하는 건데?'(이하 '대등왜')가 국내외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산과 거리가 멀던 출연진의 리얼한 산행기와 독특한 고생 버라이어티 서사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면서, 한국 특유의 '등산 문화'까지 글로벌 K-컬처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대등왜'의 흥행 화력은 수치로도 명확히 입증됐다. 공개 5일 만에 넷플릭스 국내 시리즈 부문 1위에 단숨에 올랐고 '대등왜'는 2주 연속 톱10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넷플릭스 공식 시청 집계 사이트인 투둠(Tudum) 수치에 따르면, 이 작품은 주간 글로벌 TV(비영어) 부문 톱5위 내에 이름을 올리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K-예능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간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예능은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흥행 장벽이 높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언어적 유희나 문화적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등왜'는 '산'이라는 보편적인 자연을 배경으로, 육체적 한계 상황에서 나오는 직관적이고 날것의 리액션을 담아내 시청자들의 공감대까지 성공적으로 자극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출 보고 울기는커녕…" 익숙한 감동 공식 깬 '날것의 캐릭터'

작품의 주된 인기 요인으로는 기존 예능의 익숙한 성공 공식을 과감히 탈피했다는 점이 꼽힌다. 평생 등산에 관심이 없던 일명 '등알못(등산을 1도 모르는 사람)' 4인방 배우 이채민, 가수 카더가든, 데이식스 도운, 올데이 프로젝트 타잔의 예상치 못한 케미스트리가 핵심 관전 포인트로 작용했다.

설악산 전지훈련을 시작으로 태백산, 한라산, 영남알프스,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아름답지만 거친 설산을 오르는 이들의 목표는 '정상 정복'이 아닌 오직 '하산'이다. 등산하는 내내 억울함을 토로하고 투덜거리는 캐릭터들의 리얼한 갈등이 뜻밖의 유머를 유발했다.

특히 으레 고생 예능에서 기대하는 인위적인 감동 서사나 성취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이 차별화 요소다. 지친 몸으로 정상에 올라 장엄한 일출을 마주한 순간에도 "춥고 힘드니 빨리 내려가자"고 재촉하는 장면은 요즘 세대의 솔직한 감성을 그대로 대변했다.

나영석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예전엔 일출을 보면 무조건 울어야 했는데, 이 친구들은 힘드니까 꼴 보기 싫다고 하더라"라며 "그게 진짜 리액션이고 요즘 코드"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멤버들의 역할 분담도 재미를 더했다. 등산을 격렬히 거부하면서도 총무 역할을 수행한 맏형 카더가든부터 장거리 운전을 자처한 '교통부 장관' 도운, 멤버들과 제작진 사이의 소통을 완벽히 이끈 '외교부 장관' 이채민, 막내지만 뛰어난 행동력으로 '회장' 자리를 맡은 타잔까지 각양각색의 캐릭터가 시너지를 냈다는 평가다.

체력 단련에서 '오운완·고프코어'로…2030 세대의 바뀐 등산 방정식

'대등왜'의 폭발적인 인기는 최근 한국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일어난 등산 문화의 체질 변화와도 깊게 연결되어 있다. 등산은 본래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국민 스포츠 중 하나다.

한국갤럽의 실태 조사 자료에 따르면, 과거 기성세대의 등산이 묵묵히 정상에 오르는 정복욕이나 체력 증진에 중점을 뒀다면, 최근 2030 세대가 즐기는 등산은 완전히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재정의된 것으로 분석됐다.

요즘 세대에게 산은 SNS에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인증샷을 올리는 근사한 배경이자, 아웃도어 의류를 일상복과 매치하는 '고프코어' 패션을 뽐내는 무대다. 여기에 힘겨운 산행을 마친 뒤 맛있는 음식과 지역 막걸리를 즐기는 '하산 후 먹방'까지 더해져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잡았다.

한국 특유의 등산 트렌드는 이제 국내를 넘어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K-컬처 경험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추세다. 대중교통으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서울의 북한산, 관악산, 북악산, 아차산 등 도심 명소에는 한국의 산을 직접 체험하려는 외국인 방문객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늘었다.

서울AI재단이 발표한 '2025년 외국인 유동인구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서울 도심 4개 산의 외국인 일평균 유동인구는 북한산이 4015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북악산(2169명), 관악산(1192명), 아차산(729명) 순으로 집계됐다. 특히 아차산의 경우 외국인 방문객 수가 전년 대비 11.8%나 급증했고, 관악산 역시 10.0%의 증가율을 기록하며 로컬 관광 명소로서의 높은 성장세를 나타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은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도심과 자연의 조화로운 풍경에 열광할 뿐만 아니라, 산입구에서 장비를 대여하고 하산 후 파전에 막걸리를 즐기는 한국 특유의 '산악회 문화' 자체를 이색적인 K-콘텐츠로 수용하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SNS상에서는 한국의 주요 명산을 순례하며 인증하는 '도장깨기 챌린지'가 해외 K-팝 및 K-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필수 여행 코스로 올라서기도 했다.

"등산은 시작일 뿐"…K-예능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대등왜'는 단순히 고생스러운 산행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 설산의 압도적인 절경을 다큐멘터리 못지않은 고화질 영상미로 담아내며 시각적 쾌감까지 선사했다. 한여름 안방극장에 시원한 설경을 전달한 동시에,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한국 설산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마지막 여정을 마친 뒤 출연진은 저마다의 답을 내놓았다. 카더가든은 "자신과의 싸움을 하러 오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면서도 "저는 죽을 때까지 안 할 것 같다"고 하소연해 웃음을 자아냈다. 반면 도운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계기"라 전했고, 타잔은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이채민은 "짧은 시간 안에 피어난 전우애"를 언급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제작진은 향후 '등산'이라는 키워드를 넘어서 다양한 극한 환경을 주제로 세부 콘셉트를 변주하며 프로젝트를 이어갈 뜻을 내비쳤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글로벌 예능 트렌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인위적 설정보다 출연진의 실제 반응과 지역적 특색을 담아낸 아웃도어 예능 포맷이 해외 시장에서 한층 강화된 모멘텀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