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몫'에도 88년 버틴 위스키의 비결

입력 2026-09-03 18:08
수정 2026-09-04 00:23
‘매년 2%씩 증발하는데 어떻게 술이 남아 있었을까.’

스코틀랜드 위스키 브랜드 발베니가 최근 서울 성수동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숙성한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 ‘1931 컬렉션 88년’(사진)을 공개하자 위스키 애호가들이 던진 질문이다.

위스키는 오크통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조금씩 줄어든다. 나무통을 통해 물과 알코올이 증발하기 때문이다. 이를 ‘천사의 몫’이라고 부른다. 매년 증발하는 위스키 원액은 전체의 약 1~2%로 알려졌다.

이 위스키는 1931년 오크통에 넣어 2019년까지 숙성했다. 그해 남은 원액으로 만든 제품은 단 17병. 88년간 원액이 모두 증발해버렸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오산이다. 2%를 88번 더해 176%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매년 남아 있는 원액에서 다시 일정 비율이 증발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결정적인 비결은 더 작은 오크통으로 ‘이사’한 데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르자 발베니는 남은 원액을 더 작은 오크통으로 옮겼다. 기존 대형 오크통에 계속 두면 통이 손상되거나 원액 전체를 잃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켈시 맥케크니 발베니 몰트 마스터는 “원래 통에 그대로 뒀다면 모든 것을 잃었을 것”이라고 했다.

숙성 과정에서 원액이 줄어드는 속도도 매년 같지 않다. 오크통의 크기와 상태, 저장고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 증발량이 달라진다. 이 위스키의 원액은 1931년 3월 스페인 헤레즈에서 들여온 유러피안 오크 셰리 버트에 채워져 스코틀랜드 더프 타운에서 80년 이상의 시간을 견뎌냈다. 위스키 숙성을 무작정 오래 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나무 성분이 지나치게 스며들면 맛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있다. 맥케크니가 2019년 숙성을 멈춘 이유다.

최근 발베니를 비롯한 위스키업체들은 ‘초고숙성’ 제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난해 스코틀랜드 독립 위스키 병입업체 고든앤맥파일이 1940년 증류한 글렌리벳 85년을 출시하며 세계 최고령 기록을 세웠다. 불과 1년 만에 발베니가 이 기록을 갈아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