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9월 10일 오전 10시 한국경제신문의 투자 정보 유료 플랫폼인 '한경 프리미엄9'(www.hankyung.com/premium9)에 게재됐습니다. 한경 프리미엄9을 구독하시면 더 많은 단독 기사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부가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발전설비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재생에너지의 공급 기여도를 과대 계상할 수 있는 새로운 산정 방식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반도체 클러스터 등 대규모 투자 발표로 2040년까지 약 27GW 규모의 전력 수요가 추가로 발생하면서, 산업계 안팎에서는 안정적인 무탄소 전원인 원자력발전이나 첨두부하를 담당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설비가 대거 증설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정부가 검토 중인 '유효부하유지능력(ELCC·실효용량 환산계수)'을 도입하면 추가 수요의 상당 부분을 서류상 재생에너지만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재생에너지는 계통에서 '제 몫'을 얼만큼 하는가10일 기후에너지환경부 등에 따르면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수립하고 있는 기후부와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의 실질적 공급 능력을 평가하는 피크기여도 산출법을 개편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출력이 급변하는 변동성 전원이다. 연료 투입량에 따라 발전량이 결정되는 원전·화력 등 전통 전원과 다르다. 전통 발전 설비는 명판에 적힌 정격용량이 곧 전력망에서 기여하는 실효용량으로 인정되지만, 태양광이나 풍력은 100MW 설비를 설치해도 실제 전력 생산으로 온전히 연결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전력당국은 여름철 한낮 등 최대 전력수요가 발생하는 피크 시간대의 발전 실적을 줄 세운 뒤, 출력이 저조한 날부터 계산해 하위 10% 경계선에 걸치는 '10분위 지점'의 발전 능력을 피크기여도로 적용해 왔다. 현재 적용 중인 피크기여도는 태양광 14.0%, 풍력 2.5% 수준이다. 그러나 기존 방식은 과거 실측치에 의존해 송배전망 여건과 전원 믹스가 급변하는 미래 계통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지적돼 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안으로 떠오른 기법이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에서 활용 중인 ELCC(실효용량 환산계수)다. ELCC는 특정 재생에너지 설비 1MW가 전력망에 추가 진입할 때 계통 신뢰도를 유지하면서 감당할 수 있는 추가 부하량을 시뮬레이션으로 도출하는 미래 예측값이다. 기후부는 태양광과 풍력을 묶은 '재생통합 ELCC'와 양수발전·에너지저장장치(ESS)를 포괄하는 '저장통합 ELCC'를 도출해 전기본에 반영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문제는 예측값으로 도출된 수치의 높은 민감도와 방법론의 불안정성이다. 동일한 1MW 용량의 ESS라도 시뮬레이션상 2030년에는 기여도가 80%에 달하지만 2040년에는 50% 후반대로 급락하는 등 목표 연도별 편차가 지나치게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시뮬레이션 안정화 방법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갑자기 주력 설비된 배터리ESS…'중복 계산' 우려출력 특성과 피크 시간대가 판이한 태양광과 풍력을 하나로 묶어 '재생통합 ELCC'를 산출하는 점도 쟁점이다. 2040년 기준 재생통합 ELCC를 적용하면 기여도가 16% 가까이로 도출된다. 풍력만 분리해 계산할 경우 수치 변동성이 극심해 태양광과의 상보성을 고려해 통합 계산했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지만, 기존 태양광 피크기여도(약 14.0%)보다도 높은 값이 도출돼 공급 능력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력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 ESS를 설비용량으로 직접 편입하는 방안 역시 '중복 계산' 우려를 낳고 있다. 종전에는 양수발전만 정식 설비로 인정하고 ESS는 백업 설비로 분류해 발전설비 용량 집계에서 제외했다. ESS는 생산된 전력을 저장했다가 방출하는 '시간 이전(Time-shift)' 장치일 뿐 독자적인 발전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공급 설비로 인정할 경우 전력망의 실제 공급능력이 과대평가될 소지가 크다. 이에 대해 정부는 "피크 외 시간대에 생산한 전기를 저장했다가 피크 시간대에 방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발전설비로 봐야 한다"며 "미국 등 주요국도 ESS에 대한 ELCC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력업계에서는 정부의 ELCC 산정안을 그대로 적용하면 서류상으로만 20대 중후반 GW에 달하는 발전 설비가 확충된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발생한다고 우려한다. 정부는 최근 2040년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보급 목표를 태양광 155GW와 풍력 61GW 등 총 220GW로 제시했다.
여기에 ELCC를 적용하면, 기존 피크기여도 대비 태양광의 실효용량은 약 2.5GW, 풍력은 약 8.5GW 늘어난다. 여기에 신규 산입되는 ESS 약 19.5GW를 더하면 발전소를 추가로 짓지 않고도 실효 설비가 장부상 증가하는 셈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산정 방식이 확정될 경우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가동 등에 따라 추가로 필요한 27GW 규모의 전력 수요가 재생에너지 계산법 변경만으로 상쇄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결국 대규모 전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신규 원전이나 LNG 발전소가 들어설 입지가 대폭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