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믿을 바엔 차라리"…연예인까지 몰려간 '생존 수업' [불신 청구서]

입력 2026-09-05 17:04
수정 2026-09-05 18:24

'불신 청구서'는 10월 2일 형사소송법 개정법률 시행을 한 달 앞두고 달라질 사법 환경의 사회적 비용을 짚어본다. 개정법 시행으로 보완수사권을 지닌 검사를 통해 미진한 수사를 걸러내던 장치가 사라지는 만큼 국민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국민 개개인의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대가로 어떻게 되돌아오고 있는지 추적한다. [편집자주]
<i>"힘으로 빼려고 하지 마세요. 손목 방향만 바꿔보세요."</i>
80kg이 넘는 남성이 기자의 손목을 힘껏 움켜쥐었다. 체중이 두 배 가까이 나가는 성인 남성의 힘을 정면으로 뿌리치기는 쉽지 않았다. 팔을 뒤로 잡아빼며 버텨봤지만 손목이 단단히 잡히자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2일 서울 강북구 KKM 크라브마가 체육관. 강사의 말대로 손목을 살짝 틀고 체중을 실어 몸을 돌리자 꽉 잡혀 있던 손이 순간 풀렸다. 힘으로 맞서는 대신 관절과 신체 구조를 이용해 빠져나올 틈을 만든 것이다.

최근 범죄 피해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이처럼 '위험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배우려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위험이 닥친 순간 경찰이 나를 제대로 지켜줄 수 있느냐는 불안까지 번지면서다. 실제 시민들이 무엇을 배우고, 왜 호신술을 찾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자가 직접 크라브마가 강습을 받아봤다. ◇ 진지희·소유도 배운다…호신술 체험기

이스라엘 군에서 발전한 실전형 호신술로 알려진 크라브마가는 상대를 제압하기보다 위험에서 빠르게 벗어나는 데 초점을 둔다. 배우 진지희와 운동 마니아로 알려진 씨스타 출신 소유도 크라브마가를 배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라브마가가 '탈출'에 초점을 둔 호신술이라는 점은 훈련에서 곧바로 체감됐다. 칼을 든 괴한과 맞닥뜨린 상황을 가정하자 실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몸부터 피해야 할지, 칼을 든 손을 잡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결국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치명상을 피하기 어려웠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간적인 판단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강사는 이런 반응 때문에 반복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위험한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으면 막상 위협을 받았을 때 몸이 굳거나 웅크리기 쉽다는 것이다. 반대로 비슷한 상황을 여러 차례 겪고 대처법을 익혀두면 적어도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몸이 기억한다는 설명이다.

이날 마지막으로 배운 동작도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은 아니었다. 목을 조르며 올라탄 상대를 밀어낸 뒤 몸을 빼내 곧바로 달아나는 방법이었다. 강사는 "치명상을 피하는 게 목표"라며 "싸우지 말고 도망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직접 배워보니 호신술은 강해지는 법이라기보다 위험한 순간에 선택지를 하나 더 만드는 일이었다. 짧은 강습이었지만, 예전 같으면 막막하게 멈춰 섰을 상황에서도 이제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부터 떠올릴 수 있겠다는 작은 자신감이 남았다. ◇ "경찰 못 믿겠다"는 공포에…'도망치는 법' 배우는 시민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9월 3일 기준 최근 1개월간 국내 '호신술' 웹 검색량은 전월 대비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000% 이상 급증했다. 연관 검색어로는 '호신술 도장'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는 경찰이 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국가 안전망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권력의 도움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위험에 대비하려는 일종의 '예방의 사유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검색 관심도가 최고치인 100을 기록한 날은 지난달 30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장씨 실종 사건을 허위 종결한 혐의를 받는 부 모 경장이 장씨 사건 수사보고서 미작성은 물론, 제주 실종사건 30% 가량을 자체 종결 처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부 경장이 긴급체포된 지난달 22일에도 호신술 검색 관심도는 97까지 치솟았다. 이후에도 이전보다 높은 수준을 이어갔다. 호신술을 검색한 이용자들이 함께 찾은 연관 검색어 가운데서는 '호신술 도장'이 가장 많았다.

각종 지역 맘카페에서도 자녀에게 호신술을 가르칠지 고민하거나 부모와 아이가 함께 배워보겠다는 게시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배우 진지희와 가수 소유처럼 최근 여성들이 많이 배우는 추세가 늘고 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최근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20대 여성 신모 씨는 "범죄가 전혀 없는 사회를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제대로 보호받고, 억울한 피해자로 남겨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라며 "지금은 그런 안심조차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 "영안실보다는 중환자실이 낫다"내달 2일부터 검찰청 폐지와 보완수사권 폐지로 경찰의 수사 책임과 업무 부담이 커지는 만큼, 향후 사건 적체나 수사 공백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할 경우 스스로 위험에 대비하려는 움직임과 함께 호신술 수요도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영업 중인 체육도장 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행정안전부 체육도장업 인허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연말 기준 영업 중인 전국 체육도장은 2019년 1만4983곳으로 저점을 찍은 뒤 2025년 1만6912곳까지 6년 연속 증가했다. 6년 사이 12.9% 늘어난 것으로, 호신·격투 운동을 포함한 체육도장 공급 기반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크라브마가 강사는 "여성분들 강습 문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요즘은 60대 여성부터 초등학생까지 체육관을 찾는다"며 "수요가 늘다 보니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호신술 특강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구본근 한국크라브마가협회장은 최근 유튜브 방송에서 "영안실보다는 중환자실이 낫지 않겠느냐"는 말을 자주 한다고 밝혔다.

김형식 한국호신술진흥회 회장은 "과거에는 성인이나 여성 등 특정 수요층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호신술을 찾고 있다"며 "특히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수요가 늘었고 지난해보다 약 50%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희선/신현보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