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속에서 '거즈' 나왔는데 진료기록 거부…수의사법 국회 문턱 넘나

입력 2026-09-02 16:13
수정 2026-09-02 17:40

반려동물이 수술 뒤 숨지거나 의료사고가 의심돼도 보호자가 동물병원 진료기록을 받아볼 권리조차 명시하지 않은 수의사법의 입법 공백이 메워질 전망이다. 수년간 수의사단체 등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동물 진료기록 공개 의무화 법안이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입법 절차에 들어갔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2일 전체회의를 열고 보호자가 동물 진료기록을 열람하거나 사본을 교부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수의사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앞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심사를 거치게 된다.진료 뒤 반려동물 숨져도 기록 요구는 ‘거부’


현행 수의사법은 수의사에게 진료부를 작성하고 보존할 의무를 부과하면서도 정작 동물 보호자가 이를 열람하거나 사본을 받을 권리는 명시하지 않고 있다. 진단서와 검안서, 증명서, 처방전 등에 대해서는 발급 의무가 있지만 진료기록은 빠져 있다.

이 때문에 반려동물의 의료사고가 의심되더라도 보호자가 당시 어떤 처치가 이뤄졌는지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4년 9월 푸들 '민희'는 서울의 한 동물병원에서 중성화 수술받은 뒤 건강이 악화했다. 이후 복강 안에 남아 있던 거즈가 장에 유착된 사실이 발견됐다. 거즈와 장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까지 받았지만 지난 1월 결국 숨졌다.

보호자는 중성화 수술 과정에서 의료과실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해당 병원에 진료부 사본을 요구했다. 하지만 병원은 현행법상 진료부를 교부할 의무가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비슷한 사례는 잇따랐다. 응급진료를 받은 당일 반려견이 숨진 한 보호자는 병원에서 진료기록을 받지 못해 법원에 증거보전을 신청했다. 법원의 제출 명령까지 나왔지만 병원은 응하지 않았다.

심장병 약을 끊은 지 사흘 만에 반려견이 숨진 사례에서는 보호자가 증거보전 절차를 거친 뒤에도 1장짜리 진료부만 받았을 뿐 영상자료 등은 확보하지 못했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지 9시간 만에 고양이가 숨진 사례에서도 병원은 진료기록을 내줄 법적 의무가 없다며 보호자의 요구를 거부했다.사람은 볼 수 있는데 반려동물 기록은 못 봐
사람이 병원에서 진료받은 경우와도 차이가 크다. 의료법에 따라 환자는 자신의 진료기록 열람이나 사본 발급을 요구할 수 있고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 반면 동물 진료에서는 그동안 보호자에게 이에 상응하는 권리가 명시적으로 보장되지 않았다.

진료기록을 확보하려는 보호자는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을 제기하거나 법원에 증거보전을 신청하는 등 별도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의료사고 여부를 따져보기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는 데부터 시간과 비용이 드는 구조다.

법원의 증거보전 결정을 받고도 병원이 기록을 제출하지 않는 사례까지 발생하면서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료기록 하나를 확보하기 위해 소송에 준하는 법적 절차를 밟도록 하는 것은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비판도 잇따른다.헌법소원까지 간 ‘진료기록 공백’…상임위 넘었다현행 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헌법재판소 판단까지 받게 됐다. 지난 3월, 수의사법이 동물 보호자에게 진료기록 교부를 요구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청구인들은 이 같은 입법 공백이 알 권리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재산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건은 현재 헌재가 심리 중이다.

국회에서도 동물 진료기록 공개 의무를 도입하려는 논의가 장기간 이어졌지만 이해관계자 간 이견 등으로 번번이 입법에 이르지 못했다.

이번에 농해수위가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진료기록 공개 의무화는 일단 첫 관문을 넘게 됐다. 개정안이 법사위와 본회의까지 통과하면 반려동물의 의료사고를 의심하는 보호자가 진료기록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의 법적 절차부터 밟아야 했던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번에 의결된 대안이 진료기록을 요구할 수 있는 경우를 '분쟁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로 한정한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동물권변호사단체 영원 대표 이다영 변호사는 "펫보험 보험금 청구나 다른 동물병원에서의 후속 진료 등 분쟁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진료기록이 필요하다"며 "계약 당사자인 보호자가 비용을 지불한 진료에 대한 기록을 요구할 권리가 분쟁 해결이라는 특정 목적에만 한정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도가 미비하다면 이를 악용하는 개인이 생기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특정 병원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