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직 근로자가 현장소장으로부터 "그만 나오라"는 말을 들었더라도 소장에게 해고 권한이 없다면 법적으로 '해고'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현장 관리를 담당하는 소장의 말을 사업주의 확정적인 계약 종료 의사로 볼 수 없으며 해고에 대한 대리권이나 묵시적 추인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는 최근 일용직 제초 작업자 A씨가 사업주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및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사업주의 손을 들어줬다.
2025년 3월 A씨는 일간지 등에 난 제초 작업 구인 광고를 보고 사업주 B씨와 일당 11만5000원의 근로계약을 맺고 현장에 투입됐다. A씨는 3월부터 5월 초까지 총 24일간 제초 작업을 수행했다.
A씨는 일을 가르쳐주던 선임 작업자와 자주 마찰을 빚었다. A씨는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폭언과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선임은 이 같은 다툼을 현장 관리를 맡은 소장에게 보고했다. 결국 2025년 5월 현장소장은 거듭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A씨와 면담했지만 잘 해결되지 않았고, 이 자리에서 "더 이상 출근하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후 현장에 나가지 않은 A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현장소장의 해고 통보는 사전에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거나 최소한 사업주가 이를 추인한 것"이라며 "근로기준법상 서면 통지 의무를 위반했으므로 부당해고"라고 주장했다. 이어 해고 기간 동안의 미지급 임금 3700여만원과 복직 시까지 매월 310여만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현장소장의 발언을 사업주를 대리한 법적 의미의 '해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현장소장이 원고에게 '그만 나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면서도 "면담하던 중 이뤄진 발언으로 명시적이고 확정적인 근로계약 종료의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어 재판부는 "설령 종료 의사표시를 했다고 해도,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소장이 사업주를 대신해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하는 것을 넘어 해고할 수 있는 대리권을 보유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현장 관리와 업무 지시 권한이 있다고 해서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해고 권한'까지 자동으로 위임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A씨는 사업주 B씨가 소장의 해고 사실을 알면서도 복직시키지 않았으므로 해고를 사후 묵시적으로 추인한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업주가 적극적으로 복직을 권유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소장의 해고를 묵시적으로 추인하는 방법으로 근로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할 확정적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일반적으로 현장 관리자가 '해고 대리권'을 공식적으로 부여받지 않았다면 관리자의 해고 발언은 무효이며 사업주의 공식 해고 의사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일용직 현장에서는 현장 반장이나 소장의 지시가 절대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근로자가 관리자의 한마디만 듣고 사업주에게 실제 출근 의사를 밝히거나 노무 제공을 시도하지 않은 채 스스로 출근을 중단할 경우 법적으로는 '해고'가 아니라 '근로자의 자발적 출근 포기'나 '유구무언의 계약 중단'으로 해석될 위험이 크다고 본 것이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현장에서 사업주가 아니라 관리자 등으로부터 출근 금지 통보를 받았다면 즉시 진짜 사업주(업주·대표자)에게 연락해 해고 여부와 출근 가능 여부를 명확히 확인하고 기록으로 남겨둬야 추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