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와 생면, 나또. 풀무원을 대표해 온 제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신선도가 중요해 냉장 유통망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신선식품 강자’ 이미지를 구축한 배경이지만 동시에 냉장 물류망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풀무원이 이 공식을 깨고 있다. 국·탕부터 면, 주스, 소스까지 냉장고 밖에서 보관할 수 있는 실온 제품을 빠르게 늘리면서다. 보관과 배송이 쉽고 소비기한이 긴 실온 식품을 앞세워 온라인과 수출 시장을 넓히고 수익성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2일 풀무원식품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실온 제품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5.5% 증가해 반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체 식품 매출에서 실온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상반기 약 7%에서 올 상반기 13%로 2년 만에 6%포인트 높아졌다. 비중으로 따지면 두 배 가까이 커진 셈이다.
특히 온라인에서 성장 속도가 가파르다. 올 상반기 온라인 채널의 실온 제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9% 늘었다. 실온 제품군을 본격적으로 갖추기 전인 2021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약 8.9배, 2023년 상반기와 비교해도 4.7배 수준으로 커졌다.
식품업계가 실온 제품에 주목하는 이유는 유통 구조에 있다. 냉장·냉동 식품은 생산부터 물류센터, 배송까지 일정 온도를 유지하는 콜드체인이 필요하다. 반면 실온 식품은 상대적으로 보관과 운송이 쉽고 소비기한도 길다. 온라인 판매 과정에서 물류 부담을 낮출 수 있고 장거리 운송이 필요한 수출에도 유리하다.
풀무원이 지난해 초 별도의 ‘실온 사업 활성화 태스크포스팀(TFT)’을 3개월간 운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냉장·냉동 제품에서 확보한 브랜드와 제품 개발 능력을 실온으로 옮기는 작업을 본격화했다.
성과가 가장 두드러지는 품목은 음료와 국·탕, 면이다. 지난해 선보인 실온 음료 브랜드 ‘아임리얼 100’의 대표 제품 ‘아임리얼 100 고농축’은 출시 1년 반 만에 누적 판매량 2000만 개를 넘어섰다. 지난 3월 말에는 중국 수출도 시작했다.
한식 간편식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2022년 출시한 ‘반듯한식’ 실온 국·탕 제품은 2025년까지 연평균 160.4% 성장했다. 2024년 선보인 실온 한식 소스도 80% 이상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냉장면 시장에서 쌓은 기술을 활용해 지난해 8월 내놓은 볶음짜장·볶음짬뽕·우동·칼국수 등 실온면 4종은 월 매출이 출시 초기와 비교해 600% 이상 증가했다. 올해는 국산콩 두유와 두부칩, 나또 효소, 파스타, ‘지구식단 슬림핏콩면’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실온 간편식 자체가 새로운 시장은 아니다. CJ제일제당은 햇반과 햇반컵반, 비비고 국물요리 등을 통해 일찌감치 상온 가정간편식(HMR) 시장을 키웠다. 과거에는 고온 살균 과정 때문에 ‘상온 식품은 맛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살균·포장 기술이 발전하면서 국·탕과 면, 소스 등으로 제품군이 빠르게 넓어졌다.
최근에는 여기에 온라인 쇼핑과 K푸드 수출 확대가 맞물리고 있다. 냉장·냉동 제품보다 배송 지역의 제약이 적어 온라인에서 전국 단위로 판매하기 쉽고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도 콜드체인을 별도로 구축해야 하는 부담이 작다. 국내 식품업체 입장에서 실온 제품이 단순한 간편식이 아니라 ‘유통 가능한 영토’를 넓혀주는 상품이 된 셈이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식품업계의 분위기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풀무원 역시 실온 제품을 규모화하면 물류와 재고 운영 측면에서 효율을 높여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풀무원의 올 상반기 연결 매출은 1조7439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8%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437억원으로 41.9% 늘었다. 실온 사업이 전체 이익 증가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별도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회사가 외형 확대보다 수익성 중심의 성장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실온 제품 확대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윤명랑 풀무원식품 글로벌마케팅총괄본부장은 “실온 사업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규모화해 매출 확대와 수익성 개선을 함께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