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빌딩 40년 역사가 한 권에…'도쿄 프로듀서' 출간

입력 2026-09-02 08:17
수정 2026-09-02 08:50
일본 대표 디벨로퍼 모리빌딩은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롯폰기 힐스, 아자부다이 힐스, 아크힐즈는 이제 하나의 브랜드이자 도시 개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우리가 접해온 것은 대부분 완성된 ‘결과’이거나 개발 과정을 압축한 ‘줄거리’에 불과했다. 그 성과가 나오기까지 현장에서 어떤 판단이 오갔는지, 어떤 갈등과 설득이 있었는지, 왜 문화시설과 호텔· 미술관·거리 운영까지 개발의 일부로 끝까지 끌고 가야 했는지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도쿄 프로듀서>(옮긴이 김도영,인벨로프)는 바로 그 무대 뒤를 기록한 드문 현장 보고서다.

창업자 모리 다이키치로와 후계자 모리 미노루 회장 곁에서 40여 년간 현장 사령관을 맡았던 야마모토 가즈히코는 정제된 성공담 대신 도시개발의 실제를 풀어낸다. 회의실에서 어떤 판단이 내려졌는지, 설계안은 왜 뒤집혔는지, 지역 반대와 이해관계 충돌은 어떻게 조율됐는지, 왜 사찰과 행정기관을 수차례 오가야 했는지, 그리고 왜 준공 이후의 운영까지 개발의 일부로 봐야 하는지를 담담하지만 집요하게 기록한다.

모리 미노루는 “도시를 만드는 일은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과 자본, 시간, 설득과 협업, 조정이 모여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그렇다면 야마모토 가즈히코는 그 복잡한 제작 과정을 끝까지 이끌어낸 ‘프로듀서’에 가깝다. 흔히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는 “내 인생의 목표는 개발의 프로듀서가 되는 것이었다. 이 회사라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봤다”고 회고한다.

한국에서도 부동산 개발은 기획·설계·금융·건설·자산관리 등이 얽힌 ‘종합 예술’로 불린다. 하지만 여전히 개발을 ‘짓는 일’로만 협소하게 이해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 책은 건물의 형태나 분양 성과를 넘어, 지역의 잠재력을 읽고 장기 운영과 문화적 경험까지 설계하는 ‘프로듀싱’이야말로 도시개발의 본질임을 보여준다.

한국어판에는 국내 부동산 개발 업계 전문가 3인(박희윤 현대산업개발 전무, 김경민 서울대 교수, 최자령 이지스자산운용 상무)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현장과 학계, 투자 시장의 시각에서 책의 교훈과 시사점을 입체적으로 짚는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부동산 개발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좋은 개발은 단순히 건물을 올리는 일이 아니다. 지역의 잠재력을 읽고 기존 자산을 새로운 가치로 전환하며, 사람을 모으고 머물게 하는 콘텐츠와 운영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결국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모리빌딩은 이미 비싼 1등지보다 잠재력 있는 2등지에 주목해왔다. 오피스 한 채로 끝내지 않고 주거·호텔·문화시설·상업·광장·보행 경험을 하나의 패키지로 엮어 지역 가치를 끌어올렸다. 그 결과 2등지를 1등지로 탈바꿈시키며 도쿄의 글로벌 경쟁력까지 끌어올렸다.

그래서 이 책은 디벨로퍼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시행사와 자산운용사에는 장기 가치와 운영 구조를 보는 시각을, 건축가와 설계자에게는 형태 너머의 사업 논리와 협업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지자체와 공공 실무자에게는 합의 형성과 도시 활성화의 실제를, 브랜드 전략가와 콘텐츠 기획자에게는 도시개발이 결국 ‘경험과 운영의 설계’임을 일깨운다.

저성장 시대 짓기만 하는 개발은 더 이상 해답이 아니다. 살아남는 개발은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 도시의 경쟁력을 만드는 방식이다. <도쿄 프로듀서>는 그 치열한 현장과 판단의 시간을 응축한 한 권의 기록이다. 책장을 여는 순간 긴장감이 흐르는 모리빌딩 회의실의 문이 열린다.

구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