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남친이랑 그랬다며. 옆반 친구한테 들었어."
중학교 2학년인 소정(15·가명)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자신을 가리키며 수군거리는 걸 듣고 왜 그러냐고 따졌다가 충격적인 답을 들었다. 아이들은 소정이가 남자친구와 성관계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중학교까지 퍼져 있었다. 성관계 동영상 또한 공유되고 있었는데 최초 유포자를 찾고 보니 바로 그의 남자친구였다.
소정이는 남자친구인 A군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다. A군은 처음 출석정지 10일과 특별교육 이수 등의 조치를 받았지만, 소정이가 처분을 가중해달라며 행정심판을 청구하면서 강제전학 처분까지 받았다. 하지만 A군은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 강제전학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A군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전학 가지 않은 A군…왜 법원은 A군 손을 들었나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교내 학교폭력을 다투는 소송에서 강제전학 처분을 둘러싼 판결이 엇갈려 교육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인천지법 행정2부(재판장 송종선)는 지난 7월24일 가해 중학생 A군의 강제전학 처분을 취소했다.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 학생의 선도 등 공익적 목적에 비해 A군의 불이익이 지나치게 큰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합의서를 썼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화해를 했다고 판단했다.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는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 고시에 따라 학교폭력 심각성·지속성·고의성 정도,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 가해학생의 선도 가능성,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간의 화해 정도, 피해학생이 장애학생인지 여부에 따라 점수화해 출석정지(10~12점), 학급교체(13~15점), 전학(16~20점), 퇴학처분(16~20점)을 판단한다.
A군은 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16점을 부과받아 강제전학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강제전학 처분 이후 A군과 피해학생이 합의서를 작성했다는 점을 들어 화해의 정도 점수를 3점에서 2점으로 낮춰 A군의 합계점수가 전학처분이 가능한 16점에서 14~15점으로 낮아질 수 있다고 봤다.
피해학생이 이미 전학을 갔다는 점도 참작됐다. 피해학생과 A군이 이미 다른 학교에 재학 중임으로 피해학생과의 분리, 그로 인한 피해학생의 보호라는 목적이 충분히 달성돼 A군의 전학조치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전학 처분은 A군이 그동안 학교 내에서 이룬 성과나 교우 관계 등을 박탈하는 것으로 무거운 조치이며, 전학을 갈 경우 A군은 학교폭력으로 전학 온 학생이라는 인식 때문에 새로운 교류와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할 가능성 높다고 봤다. 전학 처분은 분쟁 조정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봐 재판부는 A군의 강제전학 처분을 취소했다.확인서 한 장에 합계 점수 '뚝'…법원이 본 반성 정도
이처럼 법원은 학교폭력 행위의 내용만으로 전학이나 학급교체 처분의 정당성을 판단하지 않는다. 비슷하게 성적인 내용의 소문을 퍼뜨린 사건에서도 가해학생의 반성과 선도 가능성 등을 이유로 학급교체 처분을 취소한 판결이 나왔다.
중학생이 교사를 대상으로 꿈에서 성행위를 했다고 소문을 낸 사례에서 가해학생의 학급교체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인천지법 대상판결과 유사하게 '확인서'를 썼다는 점에서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를 인정했다. 창원지법 행정1부(재판장 곽희두)는 피해학생이 피해교원과 꿈에서 성행위를 한 점을 친구들에게 얘기하고, 이 점에 대해 사죄한 확인서를 바탕으로, '원고의 반성 정도·선도 가능성'에 부과한 점수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합계 점수는 13점으로 출석 정지에 해당해 가해학생의 학급교체 결정을 취소했다.
반면 학급교체나 전학이 정당하다고 본 사례도 있다. 쟁점은 사과 여부였다. 가해학생이 피해학생들의 성 관련 신체 사진을 소지하고 유포한 사건은 앞선 인천지법 대상판결과 달리 전학 처분이 정당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인천지법 행정1-1부(재판장 김성수)는 원고와 피고의 사과·합의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점을 들어 원고의 반성 여부를 낮게 판단했다. 이에 합계 점수를 18점으로 평가해 전학 조치가 정당하다고 봤다.
전문가는 학교폭력 조치가 처벌이 아닌 교육적 조치라는 점에서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심창보 법무법인 심윤 변호사는 "합의나 사과문이 있으면 판결에서 참작이 많이 된다"며 "교육 기관은 처벌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닌 교육 선도 기관이라 피해학생 보호와 가해학생 교육 선도라는 두 가지를 대전제를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반성여부와 화해 정도는 조치 판단 기준의 2/5를 차지한다. 이는 비중이 많이 큰 편"이라고 설명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