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어업 근로자의 임금을 브로커에게 송금하거나, 계약과 다른 원양어선에 태우는 등의 정황을 포착하면 현장 공무원이 강제노동이나 인신매매 피해 사례라고 판단해 즉시 보호·조사 절차를 밟을 수 있게 된다. 정부가 원양·양식·염전 등 어업 분야 이주 노동자의 강제노동·인신매매 피해를 현장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피해자 식별지표’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2일 성평등가족부와 해양수산부는 공무원이 수사·점검 현장에서 인신매매 피해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인 ‘인신매매 등 피해자 식별 및 보호에 대한 지표’를 3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폐쇄적 선박과 외딴 염전 등에서 발생하는 노동착취를 단순한 임금체불이나 근로조건 위반으로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신매매·강제노동 피해 여부까지 따지기 위해서다.
미국 국무부 인신매매 보고서가 한국에 어업 분야 특화 식별지표를 마련하라고 권고한 데 따른 조치이기도 하다. 이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외국인 어업 강제노동 피해자를 확인하지 못하고, 원양어업 인신매매 사건을 기소한 사례가 없다며 염전·어업 분야 인신매매 및 강제노동에 관한 한국 측 대응을 주문했다. 지난해 4월에는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이 전남광주 신안 태평염전의 천일염을 ‘강제노동으로 생산한 제품’이라는 이유로 수입보류명령을 내려 국제 통상 이슈로 번졌다.
새 지표는 노동착취 여부를 현장에서 포착할 수 있도록 구체적 판단 기준을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급여를 브로커나 고용주가 지정한 제3자 계좌로 강제 송금하게 하거나 고금리 대출을 받게 하는 등의 행위, 계약서와 다른 원거리 조업선에 태우거나 계약에 없는 업무를 시키는 행위 등을 노동착취로 규정했다.
선박에서의 노동착취 기준도 구체화했다. 승선 전후 구금, 항구 정박 때 상륙 제한, 휴대폰·인터넷 사용 제한, 정상적인 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업장 변경을 막는 행위, 지역 선주 모임을 통해 다시 승선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하거나 계약 연장·재입국 추천 거부 등을 빌미로 부당한 근로조건을 강요하는 행위 등이 포함됐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