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14기 출신 원로 법조인 84명이 최근 대법관 후보자 제청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헌법의 경계를 넘지 말라"며 집단 성명을 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 대신 다른 후보자의 재제청을 요구하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2일 이같은 성명을 발표하며 "헌법이 대법관 인사 권한을 대법원장과 국회, 대통령에게 나눠 부여한 것은 어느 한 권력이 최고법원의 구성을 좌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강조했다.
성명은 최근 대법관 후보자 제청을 둘러싼 대통령과 대법원 간 갈등을 문제 삼았다. 대법원장이 약 7개월 동안 대통령 측과 사전 협의를 하지 못한 끝에 대법관 후보자를 서면으로 제청했지만, 대통령이 절차적 완결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다른 후보자의 재제청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임명권 있다고 후보자 선택권까지 있는 것 아냐이들은 헌법 제104조 제2항을 근거로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서로 구분되는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조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대통령에게 임명권이 있다고 하여 후보자 선택권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며 "대통령의 임명권은 대법원장이 제청한 사람을 대상으로 행사되는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 역시 대통령의 임명권을 보조하는 하위 권한이 아니라 사법부 독립을 위해 헌법이 직접 부여한 독립적인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 제청을 앞두고 사전에 협의해온 관행이 있더라도 이를 헌법이나 법률이 요구하는 제청의 효력 요건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폈다. 특히 대통령이 특정 후보자를 선호해 해당 인물이 제청될 때까지 다른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실상 대통령이 제청권과 임명권을 함께 행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제청 관련 입법에도 "헌법상 권력배분 흔들어"정치권에서 거론되는 대법관 제청 관련 법 개정 움직임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대통령에게 대법원장의 제청을 반려할 권한을 법률에 명시하거나 기존 후보군 가운데 다시 후보자를 제청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겨냥한 것이다.
이들은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직접 부여한 권한을 법률로 축소할 수는 없다"며 "이미 이뤄진 제청을 무력화하고 특정한 인선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후적으로 법률을 변경한다면 제도 개선이 아니라 헌법상 권력 배분을 흔드는 입법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통령과 국회 다수 세력이 같은 정치적 기반을 갖는 상황에서는 권력 행사에 더욱 엄격한 절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치권력이 결합해 대법원 구성까지 좌지우지하기 시작한다면 권력분립은 껍데기만 남게 된다"고 했다. 사법개혁과 사법장악은 엄연히 달라이들은 사법개혁과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을 확대할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를 명분으로 사법부 독립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법개혁은 필요하고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도 확대돼야 한다"면서도 "사법개혁과 사법장악은 엄연히 다르다"고 밝혔다. 이어 "진정한 개혁은 어느 대통령도, 어느 정당도, 어느 대법원장도 사법부를 마음대로 지배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장을 향해서도 정치적 압력에 흔들리지 말고 제청권을 행사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이번 제청 거부에 헌법상 정당한 사유가 없거나 대통령이 거부 사유를 제시하지 않았다면 대법원장이 그 내용을 국민에게 상세히 알리고 재제청 요구에 응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