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사이클’로 불어난 세수를 바탕으로 내년에 ‘162조원+알파(α)’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조성한다.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하고, 경기가 나빠져 세금이 덜 걷힐 때 꺼내 쓰는 ‘재정 안전판’으로도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정부가 기금의 주요 사업비를 국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30%까지 늘릴 수 있어 재정 통제가 느슨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예상보다 더 걷힌 세금을 기금에 옮겨놓는 것보다 나랏빚을 갚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추가 세수 5개 계정으로 운용
기획예산처가 1일 발표한 ‘2027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미래대응기금 수입은 162조3000억원으로 편성됐다. 핵심 재원은 예산처가 새로 개념을 만든 ‘추가 세수’다. 내년도 내국세 세입예산에서 최근 10년 평균 내국세 추세치를 뺀 수치다. 여기에 추가 세수에 연동해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으로 자동 배분되는 지방교부세, 교육교부금 몫도 기금 재원으로 돌린다. 이 금액이 162조3000억원이다.
기금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정부는 9월 세입 재추계에서 올해 내국세가 기존 예상보다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될 경우 그 증가분도 기금에 적립할 계획이다. 초과 세수가 30조~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총기금 규모는 200조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기금은 총괄계정과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개 사업계정으로 나뉜다. 총괄계정에 109조4000억원을 배정하고 나머지는 사업계정인 청년(13조3000억원), 성장동력(14조2000억원), 지방(15조3000억원), 교육·인재(10조1000억원)에 투입한다. 사업계정에 배정한 자금 가운데 45조4000억원을 내년에 사용한다.
104조4000억원은 여유 자금으로 남겨 주식, 채권 등으로 운용한다. 세수가 부족하거나 긴급한 정책 수요가 생길 때 꺼내 쓸 방침이다. 박홍근 예산처 장관은 “일반회계가 복지, 행정, 국방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것과 달리 미래대응기금은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미래 대비가 필요한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전략적 플랫폼”이라며 “세수 호황과 불황에 따라 재정지출이 출렁이는 것을 줄이는 재정 안정화 장치라는 점에서도 별도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 통제 느슨한 구조미래대응기금이 정부 ‘쌈짓돈’으로 쓰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예산처가 입법예고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미래대응기금의 주요 항목 지출액을 30% 이하 범위에서 국회 재심의 없이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국회가 승인한 10조원 규모의 기금 사업은 국회 추가 의결 없이 13조원으로 늘릴 수 있다. 예산처 관계자는 “미래대응기금의 운용 계획 변경 절차는 49개 사업성 기금과 같다”며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기술 변화가 빠른 사업은 신속하고 탄력적인 투자가 필요한 만큼 신속한 사업 변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초과 세수 일부를 미래대응기금으로 옮길 수 있도록 규정한 국가재정법 개정안 조항도 논란이 되고 있다. 현행법은 초과 세수로 세계잉여금이 생기면 지방교부세·교육교부금 정산, 공적자금 상환, 국채 상환 등의 순서로 쓰도록 한다. 하지만 초과 세수를 결산 전 미래대응기금으로 먼저 떼어내면 세계잉여금 자체가 줄어들어 국채를 갚는 데 쓸 재원도 그만큼 감소한다. 한 야당 의원은 “국가채무를 갚아야 하는 초과 세수로 기금을 조성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기금 일부를 활용해 국채를 상환하는 만큼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예산처 관계자는 “기금에서 사업비를 배분하고 남은 재원을 적립해 세수 부족에 대응하거나 국채 신규 발행을 줄이는 데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