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1일 전격 사퇴했다. 지난해 6월 이재명 정부 초대 정책실장으로 임명된 지 1년3개월 만이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이날 “김 실장이 지난달 31일 사의를 표명했고, 이재명 대통령이 오늘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6개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하는 중폭 개각을 단행한 지 이틀 만이다. 김 실장이 개각 이틀 뒤 돌연 사퇴 의사를 밝힌 데 대해 정치권에서는 “개각 발표에도 민심 이반이 여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부동산 정책에 책임이 있는 재정경제부와 국토교통부 장관을 교체하면서 해당 부처 ‘2인자’인 차관을 승진시키고, 정책실장을 유임한 게 “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다”는 강한 신호로 해석돼 비판론이 더 커졌다.
김 전 실장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부동산 세제 개편에 따른 지지율 하락 책임론이 제기되며 사퇴 압박을 받았다. 그가 주도해 마련한 정책인 만큼 여권에서도 “‘유능한 정부’라는 이미지에 타격을 받았다” “성난 민심을 달래려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청와대에 정책실장 교체 필요성을 강하게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기존 정책에서 자유로운 인물이 새로운 시각으로 정책을 꾸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새로 지명된 가운데 청와대도 새로운 인물이 와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등 기존 정책 논쟁에 매몰되지 않고 양극화 해소, 추가 세수 활용 등의 정책을 제대로 펼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자신이 잔류하면 야권 공세에 정부 정책의 긍정적 효과가 반감될 가능성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차기 정책실장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함께 기업 경험이 있는 관료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김용범, 결국 퇴장
메가 프로젝트 추진 앞두고…정쟁 빌미 우려해 물러난 듯이재명 대통령이 1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사진)의 사표를 수리한 것은 사의를 밝힌 지 하루 만이자 2기 개각을 발표한 지 이틀 만이다. 자진 사퇴 형식을 취했지만 후임 인사가 정해지지 않은 채 자리를 비운 것은 사실상 경질성 인사로 풀이된다.
재정경제부와 금융위원회 관료 출신인 김 전 실장은 지난해 6월 임명된 직후부터 각 부처를 지휘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역대급 장악력을 과시하며 ‘왕(王)실장’으로 통했다. 장관을 거치지 않고 이형일 재경부 차관,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 등에게 직접 지시하는 일이 잦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앞장섰고, 올해 초엔 전남광주 반도체 팹 신설 등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챙겼다.
‘김용범표 정책’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들어 코스피지수가 급락하면서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증시 변동성을 키웠고, 개인투자자의 손실이 급격히 불어났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후 부동산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 세제 개편안도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그럼에도 김 전 실장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뢰는 매우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의 X(옛 트위터)에서 김 전 실장을 향한 야권의 공격을 비호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그가 연말까지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을 중심으로 경제정책 부작용을 성토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김용범 책임론’을 강하게 들고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달 30일 발표된 인선 명단에 정책실장이 없는 데 대한 불만이 제기됐다고 한다. 재경부 및 국토교통부 장관 교체 등 ‘중폭 개각’의 효과도 반감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 전 실장은 지난달 주변에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에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 그만둬야 할 것 같다’ ‘단순히 개각만으로는 지지율을 되돌리기 어렵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청와대에선 당대표 선거에 따른 당내 지지 분화를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자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그에 대한 유권자의 정책 신뢰도가 낮아진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메가 프로젝트 등 과제를 추진해야 하는데 김 실장이 정쟁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이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올린 ‘가을편지’라는 게시물은 사퇴를 결심한 뒤 쓴 글로 알려졌다.
김형규/최형창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