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밤 도심을 운전하다 보면 차선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건물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대형 전광판이다. 화면이 바뀔 때마다 밝기와 색이 급격히 달라지고, 젖은 노면이 그 빛을 그대로 반사한다. 차선을 봐야 할 순간에 시선이 분산되고 주의력이 떨어진다. 밤길만의 일도 아니다. 낮에도 눈이 부시다는 민원이 이어지자 서울시는 밝기 기준을 마련하기로 하고 주요 전광판의 휘도를 직접 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 전광판은 골칫거리인 동시에 도시경제의 자산이다. 2016년 지정된 서울 강남 코엑스 자유표시구역은 이후 5년간 1577억원의 광고 매출을 냈다. 디지털 옥외광고는 상권과 도시 브랜드를 움직이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주목을 끄는 방식에 있다. 주변보다 밝아야 눈에 띄니 화면이 계속 밝아진다. 그런데 사람의 눈은 절대적인 밝기보다 주변과의 대비에 반응하므로, 모두가 밝아질수록 주목의 효과는 줄어든다. 실제로 간판 밝기에 관한 실험 연구에서도 옆 가게와 경쟁하다 보면 사람이 읽는 데 필요한 수준을 훌쩍 넘긴 밝기가 나타난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서울시가 주요 전광판 52곳을 실측한 결과 주간 휘도는 1448cd/㎡에서 1만4000cd/㎡까지 큰 격차를 보였다. 광고 하나 보여주는 데 필요한 밝기가 열 배씩 다를 리 없다.
밤의 운전자도, 낮의 직장인도 광고를 사고판 사람은 아니다. 전광판에서 생기는 수익은 사업자에게 돌아가지만, 그 빛으로 인한 불편은 주변 사람 몫이다.
서울시는 도시 야간경관을 관리하기 위해 지난 4월 처음 권고 기준을 적용했다. 실측과 해외 기준을 토대로 야간 밝기를 현행법 허용치의 3분의 1 수준까지 낮췄고, 화면의 색과 전환 방식까지 함께 다뤘다. 주변이 어두울수록 같은 화면도 더 밝게 느껴지니, 밤에는 낮보다 적은 빛으로도 화면이 잘 보인다. 남은 것은 실효성이다. 권고여서 벌칙이 없다. 200곳을 점검했더니 실제로 휘도를 낮춘 곳은 주간 46곳, 야간 40곳이었고 전체 밝기는 주간 8.1%, 야간 16.1% 낮아지는 데 그쳤다. 권고만으로 밝기 경쟁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밝기 규제가 광고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밝기로 경쟁하기 어려워지면 승부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로 옮겨간다. 서울 중구는 지난 3월부터 4월 말까지 매일 오후 3시45분 명동 일대 전광판 다섯 곳에서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입체 영상을 1분씩 동시에 내보냈다. 사람들은 화면의 밝기보다 다섯 화면을 하나로 엮은 콘텐츠와 연출에 더 반응했다.
정부는 올해 제3기 자유표시구역을 추가 지정할 계획이다. 광고물의 크기와 형태 등 규제를 풀어 창의적인 옥외광고를 허용하는 제도다. 크기와 형태를 푸는 것과 밝기를 묶는 것은 별개다. 관건은 그 구역의 ‘자유’를 무엇의 자유로 볼 것인가다. 밝기의 자유로 읽으면 도시는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표현과 연출의 자유로 읽으면 규제 완화와 야간 관리가 같은 방향을 향한다. 서울시가 자유표시구역에만 자동휘도조절장치를 의무화하기로 한 조치가 바로 선제적인 해답을 낸 것이다.
상업가로와 주거지, 간선도로와 하천변에 같은 밝기 기준을 적용할 이유가 없고, 같은 장소라도 밤이 깊어지면 적정 밝기는 달라진다. 애초에 밤을 낮처럼 밝힐 이유가 없다. 콘텐츠 전달에 문제가 없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잘 만든 기준은 경쟁을 없애지 않는다. 경쟁의 종목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