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상징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다. 20세기 한가운데에는 하이페츠와 오이스트라흐가 그랬다. 몬드리안과 칸딘스키의 추상화처럼 서로가 양극에서 빛났다. 새천년을 맞이할 즈음엔 막심 벤게로프, 안네 소피 무터, 정경화의 바이올린이 세상을 홀렸다. 지금 시대는 누구일까. 아우구스틴 하델리히는 우리가 후세에 남길 만한 매혹적인 답이다.
1984년생인 그는 현란한 기교로 화려한 프레이징을 보여주면서도 음악의 파도에 떠밀리지 않는다. 깨끗한 아티큘레이션과 절제미를 지키며 듣는 이의 내면을 찌를 줄 안다는 점에서 그는 콘서트홀 위의 검객 같다. 15세에 입은 화상으로 바이올린을 다시 켜지 못할 뻔한 시련의 서사 없이도 그는 음악 자체로 빛나는 인물이다.
하델리히는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우승, 그래미 어워즈 수상, <뮤지컬 아메리카>의 ‘올해의 연주자’ 선정, 베를린 필 및 빈 필과의 협연 등 음악인이라면 꿈꿀 만한 커리어를 쌓아왔다. 지난 4월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 아티스트로 활약한 그는 7월부터 조성진과 짝을 이뤄 루체른 페스티벌, 탱글우드 페스티벌에서도 관객을 만났다.
세계적 무대에 오르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그가 아르떼와 서면 인터뷰로 자신만의 음악 여정을 풀어냈다. 서면으로 진행하는 인터뷰의 경우 형식적으로 응답하는 아티스트도 있지만, 그는 달랐다. 깊이 있는 질문을 보더니 몇 주 정도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사랑을 문장마다 꾹꾹 눌러 담아 보내왔다.
하델리히는 음악의 용광로다
하델리히가 존경한다는 다비트 오이스트라흐는 다섯 살에 아버지에게서 받은 장난감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거리의 악사처럼 온종일 바이올린을 끌어안고 살았다고 한다. 하델리히도 같은 나이에 운명적 순간을 맞았다. 독일적이면서도 이탈리아적이고 미국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서막이다.
▶ 바이올린에는 어떻게 끌리게 됐나요?
"제가 다섯 살일 때 두 형은 이미 첼로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어요. 형들의 연주를 듣다 보니, 저도 음악을 하고 싶더라고요. 바이올린이 뭔지도 몰랐는데 말이죠. 처음 바이올린을 켤 땐 누구나 엉망인 소리를 내잖아요. 그런데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멋진 연주를 접하고 나서, 이 악기가 사람의 목소리와 무척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름다운 소리였죠. 그중에서도 저를 바이올린과 첫사랑에 빠지게 한 인물은 오이스트라흐와 우토 우긴(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이었어요."
▶ 독일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지만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나고 자랐잖아요. 그러면서 미국 시민권자예요.
"집에선 독일인으로서 정체성을 느끼며, 독일어를 쓰고 자랐어요. 이탈리아 학교를 다녔고요. 지금도 고향을 떠올리면 올리브나무가 생각나요. 음악은 두 나라를 오가며 배웠습니다. 스승인 우기는 이탈리아에, 다른 선생님들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계셨어요. 아홉 살 이후엔 연주회를 위해 독일로 자주 여행을 다녔죠.
문화적으로는 독일인이지만, 독일은 제게 진정한 의미의 고향은 아니에요. 두 나라 어디에도 완벽히 융화되지 못했거든요(물론 두 나라를 이해하고 유대감은 느끼죠). 그래서 스무 살에 뉴욕으로 이주했을 때 고향 같은 편안함을 느꼈나 봐요. 뉴욕은 문화의 용광로예요. 인생에서 처음으로 제가 어디 출신인지 설명하거나 어느 한 나라를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었죠. 미국에선 ‘독일계 이탈리아계 미국인’일 수 있었어요."
▶ 앨범 <아메리칸 로드 트립>(2024)으로도 미국 작품에 집중하던 기억이 나네요. 미국에서 특별했던 장소를 꼽는다면요?
"15년 이상 살았던 뉴욕이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죠. 그 외에도 미국에는 멋진 곳이 많습니다. 2002년 뉴올리언스에 처음 방문해 재즈 클럽에 갔는데, 2004년 허리케인이 파괴하기 전 도시의 모습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요즘 제가 자주 연주하는 ‘루이지애나 블루스 스트럿(Louisiana Blues Strut)’에 애착을 느껴요. 미국 서부 풍경도 정말 사랑하고요. 앨범 커버도 ‘하얀 사막’으로 불리는 유타주의 소금 평원에서 찍은 거예요.
미국 클래식 음악의 풍부하고 다양한 스타일은 문화의 용광로라는 말이 참 어울려요. 에이미 비치·새뮤얼 바버 같은 낭만주의 작곡가부터 찰스 아이브스, 존 케이지 같은 아방가르드 이단아, 번스타인·에디 사우스·콜리지-테일러 퍼킨슨처럼 재즈와 포크에서 영감받은 작곡가, 존 애덤스 같은 미니멀리스트에 이르기까지. 유럽과 비교하면 양식적으로 정말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 그러고 보니 2006년 미국에서 열린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죠?
"가장 큰 변화는 그 콩쿠르가 열리기 2년 전이에요. 그때 실내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거든요. 제 연주가 많이 바뀌게 됐죠. 콩쿠르는 정신 건강에 안 좋아요. 모든 과정이 정말 힘든데, 특히 다른 음악가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평소 음악인의 삶과는 다른 부담으로 다가오죠. 저는 콘서트 무대에 서는 것은 편안했지만, 심사위원들 앞에서 연주하는 건 어려워했어요. 콩쿠르는 인위적일 때가 있어서 가장 ‘흥미로운 음악가’를 선발하는 작업이 아니라 가장 ‘강심장인 음악가’를 선발하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우승했을 땐 안도감을 느꼈죠. 더 이상 콩쿠르에 나가지 않아도 됐으니까요.
그래도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는 기량을 측정하는 것뿐 아니라 음악적 가치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차별화되었어요. 다른 일부 콩쿠르는 경마 같기도 하거든요. 이 콩쿠르에 감사했던 점 중 하나는 참가자(‘경쟁자’로 부르는 콩쿠르도 있다)가 환대받는 느낌이 들도록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입니다."
▶ 긴장감이 무대에서 압박을 준 건가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예전엔 연주 전 무대 공포증을 겪었는데, 경험과 자신감이 쌓이면서 훨씬 편안해졌어요. 지금도 가끔 긴장을 하지만, 때론 긴장이 더 흥미진진한 연주를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무대 위에서 활을 쥔 팔이 떨려 고생하는 바이올리니스트에겐 연습에서부터 ‘호흡’에 집중하라고 권합니다. 호흡은 핑거링이나 보잉처럼 테크닉의 일부니까요. 전 요즘 무대에 서는 게 정말 좋아요. 무대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볼 수 있거든요. 이렇게 되기까지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네요."
“작은 연주회는 없다”
하델리히의 음악에는 다채로움이 가득하다. 그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 초청받으면서도 편견 없이 다양한 무대에 서길 즐긴다. 보헤미안의 낭만주의에 빠졌다가 바로크 활로 바흐를 연주하고, 블루스와 스윙 리듬이 가미된 미국 음악을 누빈다.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면서도 자신만의 현란함과 안정감을 지킨다. 하델리히라면 믿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한다.
▶ 어떻게 이렇게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할 수 있는 거죠?
"바이올린이 이렇듯 다재다능하다는 점이 멋지지 않나요? 저는 다양한 스타일을 즐겼고, 모든 것을 시도하려고 노력해왔어요. 자라면서 접한 음악도 있지만, 미국의 포크 전통은 비교적 최근에야 알게 됐어요. 물론 제가 결국 돌아오게 되는 핵심 레퍼토리도 존재합니다. 위대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바흐의 소나타, 바흐의 파르티타 같은 곡이죠."
▶ 과거 토마스 아데스의 작품을 연주할 때 “줄도 없이 산을 오르는 기분”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죠. 연주가 불가능해 보이는 레퍼토리에서도 해결책을 찾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연주가 불가능해 보이는 대부분의 작품은 사실 불가능하지 않아요. 그렇기에 우린 ‘불가능’이란 용어를 조심해서 사용해야 해요. 가끔 어떤 기술이 낯설거나 새롭고 두려울 뿐이죠. 결국 전통적인 테크닉보다 덜 어려운 것으로 결론이 나기도 하고요."
▶ “기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음악의 저편이 보인다”고 말하는 음악가도 있습니다. 당신에게 음악의 저편이 보이는 위대한 연주란 무엇인가요?
"테크닉과 음악성을 엄격하게 분리해서 보진 않습니다. 테크닉을 연습할 때도 음악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고, 음악적 고민을 작업으로 풀어내는 일은 항상 기술적 구현과 얽혀 있어요. 훌륭한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놓아줘야 해요. 너무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고 연주가 스스로 펼쳐지도록 내버려두는 겁니다. 저는 항상 ‘자연스러운 연주’를 생각해요. 하나의 음악적 문장이 다른 문장으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과정이죠."
▶ 스승인 노르베르트 브라이닌은 “가장 자연스러운 프레이징이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언급했잖아요.
"제가 인위적이고 음악 자체에서 비롯되지 않은 표현을 하면 선생님은 엄청 화를 내셨어요. “왜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하느냐”면서요. 선생님의 접근법엔 ‘절제된 소박함’이 있었죠. 그분의 미학은 (저도 요즘 이렇게 느끼는데) ‘부족한 것보다 과장하는 게 훨씬 나쁘다’는 겁니다.
저 역시 과장되거나 과도한 연주보다 차라리 너무 절제돼 지루한 연주를 듣는 쪽을 택할 거예요. 한마디로 위대한 음악은 그렇게 많은 해석이 필요 없다는 거죠. 매번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안달하는 것은 미성숙함의 표출일 수 있어요."
▶ 지금은 온라인으로 훌륭한 바이올린 연주를 쉽게 들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바이올리니스트 각자의 연주 스타일이 예전보다 덜 다양하다는 의견도 나오는데요.
"실제로도 다른 사람의 음반을 지나치게 많이 듣는 행동을 그만둬야 할 때가 옵니다. 자신만의 해석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방해가 될 수도 있거든요. 모든 사람이 유튜브 해석에서 디테일을 복사하고, 극소수만 새로운 발상을 떠올리는 세상이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 그런 점에서 당신은 연주회의 규모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음악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고 있어요.
"'작은 연주회란 없다.' 전 여러 사람에게서 이 만트라(산스크리트어로 ‘마음을 보호하는 수단’)를 들었어요.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작은 연주가 무엇으로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죠. 존경받는 음악가가 객석에 있을 수도, 작은 마을에서 열린 콘서트의 관객을 몇 년 뒤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대도시의 청중보다 소도시의 청중에게 더 소중할지도 모르는 게 콘서트입니다."
▶ 1744년산 과르넬리 델 제수로 연주하고 있죠?
"제가 ‘레두크(Leduc)’ 과르넬리 델 제수를 사용한 건 2019년 말부터예요. 이 바이올린 소리를 듣자마자 사랑에 빠졌죠. 저는 사람의 목소리 같은 전형적인 바이올린보다 첼로에 가까운, 따뜻하고 노래하는 듯한 바이올린 소리를 오래도록 찾아 헤맸습니다.
레두크는 단번에 제 맘을 사로잡았죠. A현과 D현의 서정적 악구들이 제가 원하는 방식대로 연주가 가능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중음역대가 이 악기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느 바이올린에서 다루기 힘든 음역대인데, 레두크에선 아름다운 알토와 메조 색채가 정확히 빛을 발하는 지점이죠.
지난 5년여간 차츰 악기의 소리가 열리면서 지금은 어느 때보다 멋진 소리를 냅니다. 과거엔 헨리크 셰링의 바이올린이었어요. 자라면서 그의 음반을 많이 소장하고 감상했는데, 악기를 연주하기 전부터 이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던 셈이죠."
음악의 벽에 부딪힌 후배들에게
하델리히는 클래식 음악계의 성벽을 허물고, 우리 시대에 걸맞은 소통을 이어간다. 예일대 음악대학 교수이기도 한 그는 유튜브와 레딧을 통해서도 사람들을 만나며 교류하길 꺼리지 않는다. 음악에 전력을 다하고 소신을 내비치면서도 사람들과 나누는 친근한 소통을 중시한다.
▶ 학생들을 가르칠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모든 학생이 당신처럼 연주할 순 없을 텐데요.
"저는 학생들이 저와 똑같이 하길 바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자랄 땐 그저 자신의 해석만 전수하는 선생님들에게 답답함과 지루함을 느꼈어요. 내 것을 할 수 있도록 선생님들이 도와주길 원했죠.
제 목표는 학생이 더 잘 연주하는 것은 물론, 각자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도록 만드는 겁니다.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만 가르치다 보니 대부분은 기술, 규율, 경험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편이에요. 하지만 성장 방식은 저마다 다르죠. 저는 가르치는 걸 즐깁니다. 그러면서 제 연주의 영감을 받기도 하고요."
▶ 학생들이나 좌절에 빠진 젊은 음악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마주한 문제에 대해 자문하면서 스스로가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해요. 선생님이 모든 답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그리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건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최고의 연주자도 좌절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쌓은 커리어는 각자 다르게 펼쳐지고, 그 길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여정도 당시엔 그렇게 안 느껴졌어요. 수많은 길목에서 좌절하고 무너졌죠.
음악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끈기(tenacity)’라고 생각해요.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결국 당신의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음악 자체에서 얼마나 큰 즐거움을 얻느냐’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 여름 투어를 함께한 조성진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조성진은 훌륭한 음악가이자 놀라운 피아니스트입니다. 함께 연주한 첫 음부터 자연스럽고 즐겁게 느껴졌어요. 같이 여름의 리사이틀을 만끽했죠. 더욱 흥미진진한 작업도 계획 중이에요."
▶ 새로 도전하고 싶은 작품은요?
"내년에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할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프로젝트를 무척 고대하고 있어요. 오래전부터 연주해온 곡이지만, 이제는 저만의 카덴차로 전곡 사이클 녹음을 할 때가 됐어요. 아직 이르지만 수년 후를 목표로 구상 중인 위촉 작품도 있습니다."
▶ 따로 즐기는 취미가 있나요? 약 10년 전 인터뷰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한다는 글을 봤는데요.
"네! 요즘은 그 신(scene)이 덜 활발한 것 같지만, 스타크래프트는 여전히 가장 흥미롭고 도전적인 게임 중 하나입니다(슬프게도 잘하진 못해요). 약 20년간 스타크래프트와 스타스타크래프트 2의 프로 대회를 봐왔어요. 대단한 선수들은 대부분 한국인이더라고요. 체스와 다른 보드게임도 합니다. 게임을 할 때, 특히 사람들과 할 때는 음악 생각을 안 하는 드문 순간이에요."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