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이 총지출 820조원을 웃도는 사상 최대 규모로 편성됐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급증분을 새로운 기금으로 흡수하는 방안도 마련된다.
정부는 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총지출 820조9000억원 규모의 2027년도 예산안을 심의해 승인했다. 총지출이 800조원대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본예산 대비 증가율(12.8%)은 2009년(10.6%) 기록을 훨씬 웃돈다.
정부는 총수입이 880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법인세와 소득세가 크게 늘면서 국세 수입이 584조4000억원으로 194조2000억원(49.8%) 증가, 전체 세입 증가분의 대부분을 견인했다.
지출 규모가 크게 늘었지만 재정 건전성 지표는 오히려 개선될 것으로 정부는 내다봤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0.1%로, 올해 본예산 기준 -3.9%에서 3.8%포인트 개선될 전망이다. 다만 총지출 규모는 2030년 1005조2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는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 설립으로 국가 재정 패러다임 변화를 시도한다. 최근 10년간 내국세 추세선을 초과하는 추가 세수를 재원으로 삼는다. 이는 내년 예상 국세수입의 약 27.8%에 해당한다. 일각에서는 기금 규모가 최대 200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기금은 4대 사업계정에 52조9000억원, 총괄계정에 109조4000억원이 배분된다. 사업계정 중 45조5000억원은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등 4개 분야에 내년 중 곧바로 투입된다. 총괄계정 중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 물량 축소에 쓰인다.
이와 별도로 기금 전체 차원에서 확보되는 여유 자금 104조4000억원은 세수가 급격히 변동할 때 충격을 흡수하거나 재정 여력을 보강하는 데 사용한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미래대응기금은 대규모 세수를 생산적 지출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 플랫폼이자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재정안정화 장치"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 경제 상황이 급변할 경우 기금 내 주요 지출 항목 금액을 30%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보다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국회의 통제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과 여유 재원이 생기면 국가채무 상환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제기된다.
정부는 내년 3대 메가프로젝트와 인공지능(AI), 미래성장 엔진, 청년 성장 단계별 종합 지원, 양극화 대응 및 모두의 성장, 국민안전·평화 등 크게 5가지 분야에 중점적으로 투자한다.
반도체 경쟁력 유지와 피지컬 AI 선도국가 도약, 전력·용수·산업단지 등 인프라 확충을 위한 메가프로젝트 분야에는 올해보다 97.2% 늘어난 21조3000억원을 투입한다. 첨단전략산업과 에너지 대전환 등 미래성장엔진 분야에는 22.7% 증가한 62조8000억원이 배정됐다.
생애주기별 청년 지원 예산은 53.5% 늘어난 43조3000억원으로 책정됐다. 지방 우대와 소상공인·농어민·취약노동자 지원 등을 아우르는 '모두의 성장' 분야는 36.6% 증가한 117조1000억원으로 5개 분야 중 가장 큰 규모다.
전시작전권 전환 대비 전력 확충과 재난안전 시스템 강화 등 국민안전·평화 분야에는 24.8% 늘어난 38조3000억원이 투입된다.
정부는 107조6000억원 규모의 고강도 지출구조조정도 추진한다. 이 중 38조6000억원은 관행적·소규모 사업이나 불요불급한 경상비, 저성과·중복 사업 예산을 줄이는 재량지출 절감분이다.
나머지 69조원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연동제 폐지(32조5000억원)와 교부세 산정 방식 개편(30조5000억원) 등 의무지출 절감을 통해 마련한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인 오는 3일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회는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 본회의 의결 절차를 거쳐 내년도 예산을 최종 확정한다. 법정 의결 시한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2일이다.
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